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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야만 했는가?

 
갈릴리 호숫가의 란 실버만(Ran Silberman). (사진: 올 이스라엘 뉴스)

공관복음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세 권 모두에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항해하여 수많은 귀신에 들려 고통받던 한 사람을 만나신 사건이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곳으로 가셨으며, 왜 그 사람을 치유하셨을까?

세 복음서 간에 사소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모두 동일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세 본문 모두에서 사건의 배경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 즉 오늘날 우리가 골란고원(Golan Heights)이라 부르는 완만한 경사지대다. 이 지역은 복음서마다, 혹은 동일한 복음서의 다양한 사본 전승에 따라 가다라인의 지방, 거라사인의 지방, 또는 게르게사인들의 지방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동일한 전반적 지역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명칭일 뿐이다.

마태복음에는 귀신들린 사람 두 명이 등장하는 반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한 명만 언급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거의 없다.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며 매우 사나워 쇠사슬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그 안에 있던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고 자신들을 돼지 떼 속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돼지 떼는 가파른 비탈을 내달려 갈릴리 바다에 빠져 몰사했다. 이 묘사는 동쪽 비탈이 갈릴리 바다로 급격히 떨어져 내리는 지형과 잘 부합하며, 이 지역에는 오늘날에도 야생 멧돼지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주로 이방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건너가셨으며, 왜 하필 이 독특한 기적을 행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다른 본문에서 가나안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태복음 15:24)

주목할 점은 세 공관복음 모두에서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가 또 다른 공통된 사건 바로 뒤에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호수를 건너는 도중 예수님께서는 배 안에서 잠이 드신다. 맹렬한 광풍이 작은 배를 삼킬 듯 덮치자 제자들은 도움을 청하며 예수님을 깨운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폭풍은 잔잔해진다. 그 직후 일행은 호수 건너편에 도착하여 귀신들린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여러 학자들은 이 두 사건 모두가 구약성경의 이전 이야기, 즉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폭풍 속에서 잠드신 예수님의 모습은 거센 풍랑 속 배 안에서 잠들어 있던 요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두 이야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요나의 기록에서는 바다를 잠잠하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바람을 꾸짖으시고 폭풍을 잠재우신다. 요나에 대한 이러한 암시는 예수님의 신성과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권세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요나는 잠들었다가 깨어나 기도를 요청받았을 뿐 바다를 잠잠케 한 주체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요나와 같으시되,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시기에 요나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다.

아울러 출애굽기 서사를 향한 또 다른 암시도 담겨 있다. 돼지 떼가 물에 빠져 몰사하는 장면은 홍해 바다에 수장된 이집트 군대를 떠올리게 한다. 귀신이 스스로를 밝힌 "군대(레기온, Legion)"라는 이름은 즉각적으로 군대, 곧 이집트 군대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예수님께서 바다를 잔잔케 하심으로써 자연에 대한 권세를 보이셨듯, 여기서는 물속에서 거대한 '군대' 전체를 멸하심으로써 신적인 권세를 드러내신다.

많은 학자들은 특히 마가복음이 예수님의 사역을 일종의 제2의 출애굽(Second Exodus)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이는 마지막 날에 관한 예언에서 출애굽의 이미지를 빈번히 차용하는 이사야서와의 수많은 평행 구조 속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새로운 출애굽을 반영하는 행동들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한 예언적 약속들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이사야 65장 3~4절을 읽어보면 매우 놀라운 연결고리가 발견된다: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항상 내 앞에서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무덤)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이사야 65:3-4)

이 본문과 복음서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덤 사이에 거하며 돼지고기를 먹는 자들에게 임한다.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고 있었으며, 더러운 영들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결국 바다에서 멸망당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왜 건너편으로 가셨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본문의 또 다른 이면이 존재한다.

"건너편(the other side)"이라는 표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동쪽 기슭으로 건너가실 때마다 복음서는 일관되게 그곳을 "건너편"이라고 묘사한다. 왜일까?

제2성전기 유대교 내부에서는 특히 사해문서에 잘 나타나 있듯 이원론적 신학관이 발전했다. 이 세계관은 구원을 얻기로 예정된 빛의 아들들과 심판 아래 놓인 어둠의 자식들을 명확히 구분했다.

신약성경 역시 이러한 언어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누가복음 16:8)

빛을 대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어둠을 이기기 위해 오셨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5)

"건너편"이라는 개념은 훗날 유대 신비주의 전통과 카발라에서 아람어 표현인 시트라 아크라(Sitra Achra, "반대편/건너편")로 발전했다. 이 '건너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지배하는 어둠의 영역, 곧 죄와 원수들의 영역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건너편'은 갈릴리 바다 동편 땅과 연관되었을까?

호수 동쪽의 산지는 오늘날 골란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이지만, 구약성경에서 이 지역은 '바산(Bashan)'으로 알려져 있었다. 성경학자 데릭 길버트(Derek Gilbert)는 바산이라는 이름이 "뱀의 장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미 모세오경에서부터 바산은 르바임(Rephaim)이라 불리는 존재들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바산을 정복할 때 그들은 르바임의 마지막 남은 자로 묘사된 바산 왕 옥(Og)과 싸웠다: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신명기 3:11)

르바임은 누구였는가?

구약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고대의 거인족이었다. 다른 본문에서는 이들이 죽은 자들의 영과도 연관된다: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수(르바임)를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이사야 14:9)

창세기 6장 4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으로 태어난 후손으로 묘사되는 또 다른 집단인 네피림(Nephilim)에 대해 읽을 수 있다.

이후 정탐꾼들의 보고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3:33)

모세는 르바임 역시 거인들이었다고 증언한다:

"이전에는 르바임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신명기 2:10-11)

따라서 네피림, 아낙 자손, 그리고 르바임 사이에는 일치성 내지는 깊은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성경 자체가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않는 주제를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과 하나님의 경계를 넘어서서 대홍수를 불러일으킨 죄악과 연관된 이 혼합된 후손들이 결국 뱀의 땅인 바산 지역에 살던 르바임의 혈통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거인족들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ser)는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영역(The Unseen Realm)』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 일차적 목적이 거인들과 네피림의 혼합 후손들을 멸하는 데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제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며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해방시키고 그 '건너편'의 지배자들인 귀신들을 바다에 수장시키심으로써, 어떻게 '건너편' 즉 시트라 아크라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포하셨는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는 시편 22편에는 바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등장한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시편 22:12).

'바산의 힘센 소들'과 맞서기 위해 "건너편"으로 항해하신 예수님의 발걸음은 이미 시편 22편에 예언되어 있었으며, 복음서를 통해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