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길: 시온의 대로
'시온으로 향하는 대로'라는 개념은 히브리 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예언적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히 아스팔트와 돌로 포장된 물리적인 도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동맥이자, 흩어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연결하는 구속의 거룩한 인프라입니다. 이 대로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기 백성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의 이스라엘 땅 귀환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알리야(Aliyah, '올라감')'의 맥락에서 볼 때, 시온으로 향하는 대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모으시기 위한 청사진입니다. 그것은 귀환의 예언들이 성취되는 길이며, 열방의 광야를 뚫고 예루살렘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경로입니다.
그러나 이 대로의 웅장함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구속(redemption)'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구속이라는 개념은 친족을 노예 상태에서 값을 치르고 사오거나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주는 '기업 무를 자(친족 구속자)'를 뜻하는 단어 '가알(גָּאַל, Ga'al)'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이고 법적이며 가족적인 행위입니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구속'을 선포할 때, 그들은 궁극적인 친족 구속자로서 열방의 노예 시장에서 자기 백성을 값을 주고 사서 그들에게 약속된 기업인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러한 히브리적 개념은 궁극적인 구속자로 여겨지는 예수(Yeshua)의 인격 안에서 심화되고 성취되며, 예수는 물리적 유업을 되찾으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희생적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의 영적 빚을 대속하신 분으로 이해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구속이란 물리적이면서도 영적인 것으로, 어린양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은 것입니다.
알리야는 구속에 대한 이 두 가지 이해가 하나로 만나는 교차점입니다. 이는 유대 민족을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언약이 물리적으로 역사하는 현장입니다. 동시에 이는 궁극적으로 온 세상으로 흘러 들어갈 영적 구속의 기폭제입니다. 포로 되었던 이들이 시온으로 돌아오는 것은 단순한 지정학적 이주가 아니며, 열방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화롭게 거룩히 구별하는 일입니다.
이 예언적 도로의 기초가 되는 성경 말씀은 이사야서에서 발견됩니다. 선지자는 과거 애굽에서의 첫 출애굽을 무색하게 만들 미래의 출애굽, 즉 단지 한 나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땅끝 사방에서 돌아오는 귀환에 대해 말합니다. 이 대로는 거룩함과 안전, 그리고 기쁨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다니지 못할 것이며" (이사야 35:8).
여기서 우리는 이 대로를 규정하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그네들 본연의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내내 돌아오는 포로들은 모든 인류와 마찬가지로 고난과 의심, 죄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대로의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 떼를 귀환시키심으로써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가리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유대인들의 귀환이 백성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베푸시는 거룩한 은혜의 행위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에스겔 36:22-24).
시온으로 향하는 대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시는 무대입니다. 그것은 '깨끗한' 자나 '의로운' 자를 위한 길이 아니라, 구속함을 입은 자들, 즉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정결케 된 이들을 위한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있는 자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자에게 자격을 부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행자들이 그 길에 발을 디디기 전에 친히 그들을 정결케 하시기 때문에 '부정한 자'는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정결케 하심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거룩하신 사역입니다. 에스겔은 이어 선포합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5-27).
이러한 성령의 부어주심은 알리야의 원동력입니다. 뉴욕, 파리, 아디스아바바에 사는 유대인의 마음을 흔들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 땅으로 올라오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이러한 영적 각성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아우르는 더 광범위한 구속 계획의 일부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날을 내다보았고,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서서 이 예언이 예수의 부활 이후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요엘 2:28-29, 사도행전 2:17-18). 유대 민족을 이 땅으로 다시 이끄시는 성령은 이방 민족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메시아를 통해 그들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바로 그 성령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남은 자'의 신비로 우리를 이끕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대다수 이방인 교회에 편지를 쓰며 유대인 형제들의 영적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물었습니다 (로마서 11:1). 그는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라고 설명합니다 (로마서 11:5). 이 남은 자는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한 유대인 신자 공동체를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은 자의 개념을 종말론적인 마지막 때의 모으심으로까지 확장합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선포할 미래의 날을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1:26). 이러한 구원은 물리적 귀환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로마서 11:15).
바울은 이방인의 영적 구속과 유대인의 물리적 회복이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일시적인 넘어짐으로 인해 긍휼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11:11). 그러나 유대 민족이 온전히 회복될 때—물리적으로는 이 땅으로, 영적으로는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온 세상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영적 부흥이 촉발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온으로 향하는 대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의 부활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사야 역시 이 대로를 열방의 영적 깨어남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이사야 11:10-12). 열방을 향해 세워진 기치는 단순한 신호 깃발이 아니라 메시아 자신입니다. 유대 민족이 이 땅으로 돌아올 때, 열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실재와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방인들을 구속자께로 인도하는 이정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 민족들이 알리야 과정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받는 이유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이사야 62:10). 열방은 귀환을 구경만 하는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자입니다. 기도, 재정적 후원, 정치적 지지를 통해 유대 민족의 물리적 귀환을 도움으로써,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영적 구속을 앞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치워져야 할 '돌'은 수 세기 동안 교회를 괴롭혀 온 반유대주의, 대체신학, 그리고 무관심이라는 걸림돌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돌아오는 남은 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평탄한 길을 약속합니다.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그들이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맏아들이니라" (예레미야 31:9). 돌아오는 포로들의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와 기쁨의 눈물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마음을 찌르고 죄인을 은혜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유대인 남은 자들을 이끄시는 바로 그 성령이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이끄십니다. '곧은 길'은 인간의 공로가 배제되고 여행자가 온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만 의지하는 은혜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으로 향하는 대로는 온 인류를 위한 구속의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이 입증되는 길입니다. 그것은 유대 민족의 물리적 귀환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경로입니다. 그것은 먼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그리고 그다음 열방으로 성령이 흘러 들어가는 영적 동맥입니다. 주께 구속받은 자들이 대로를 따라 올라갈 때,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은혜에 힘입어 올라가며, 성령으로 정결케 되고, "내가 잃은 자를 찾으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려니와...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고 약속하신 선한 목자의 인도를 받습니다 (에스겔 34:16).
시온으로 향하는 대로는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라는 기도의 성취입니다 (시편 80:3). 모든 올레(Oleh, 이스라엘 귀환자)가 텔아비브의 활주로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길에서 돌 하나가 치워지고, 열방을 향해 기치가 높이 들리며, 세상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이사야 11:9) 궁극적인 구속의 날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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