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srael 학술 욤 키푸르(속죄일)에 죄를 다루는 방식

Jewish men walk with a prayer shawls in Jerusalem, on Yom Kippur, the Day of Atonement, September 28, 2020. (Photo: Yonatan Sindel/Flash90)
2020년 9월 28일, 속죄일인 욤 키푸르에 기도 숄(탈리트)을 두르고 예루살렘 거리를 걷고 있는 유대인 남성들. (사진: 요나탄 신델/Flash90)

속죄일, 즉 ‘욤 키푸르(Yom Kippur)’는 성경에서 죄를 다루기 위해 매년 구별해 놓은 날로 묘사된다. 그러나 개인이 각자의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대신, 성경의 속죄일은 국가로서 공동체 차원의 죄를 다루는 방식으로 제정되었다.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이러한 기회가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다전선 전쟁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7개의 적대 세력—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그리고 서안지구·시리아·이라크 내 테러 단체들과 이란의 이슬람 정권—뿐만 아니라, 여덟 번째 전선이 된 끊임없는 미디어 전쟁까지 포함한다.

이제 아홉 번째 전선이 떠오르고 있다. 바로 파벌들이 서로를 향해 점점 더 격렬하게 맞서고 있는 이스라엘 내부의 갈등이다. 이스라엘은 치유가 절실히 필요한 분열된 국가다.

두 달 전 우리는 유대 현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형제 사이의 '이유 없는 증오(근거 없는 미움)'로 인해 역사 속 같은 날 파괴된 두 성전을 애도하는 ‘티샤 베아브(Tisha B’Av)’를 지켰다.

오늘날 우리는 세속주의 이스라엘인들과 맹렬한 갈등을 빚는 초정통파, 평화주의 성향의 이스라엘인들이 이들의 행동을 막아서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인들과 폭력적인 충돌을 벌이는 힐탑 유스(Hilltop Youth) 같은 급진적 정착민들,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정치인들의 수사를 목격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초기 설정으로 되돌리는 리셋 버튼처럼, 욤 키푸르는 다가오는 한 해를 준비하며 전체 공동체에 깨끗한 백지를 제공해 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물론 희생 제사 제도나 성전, 혹은 성막조차 없는 상황에서 욤 키푸르를 온전히 지키기는 불가능하지만, 매년 수많은 이스라엘인이 금식과 기도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회당에 참석하며, 회개할 기회에 동참하고 있다.

이 날을 행하기 위한 완전한 지침은 레위기 16장에 나타나 있으며, 익숙한 사람들에게조차 자세히 읽어보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욤 키푸르가 일 년 중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는 점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지성소를 드나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대제사장은 세 번에 걸쳐 따로 지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죽을 경우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그의 발목에 줄을 묶어 두었다는 언급은 성경에 전혀 없다. 그 전설은 성경이 기록된 이후에 발전된 것이지만, 그토록 거룩한 장소에 들어가는 것의 극심한 엄중함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다. 결국 죄는 사망을 낳으며,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대제사장 자신의 집안에서부터 말이다.

이 날의 의식에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염소 두 마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황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 그리고 염소 두 마리까지 총 다섯 마리의 서로 다른 짐승이 필요하다. 다섯 마리 중 네 마리는 죄를 속하기 위해 도살되지만, 아사셀 염소(속죄양)는 다른 제물들처럼 제단에서 희생되는 대신 완전히 잊혀진 황야로 내보내진다.

황소는 무엇보다 먼저 대제사장과 그의 집안의 죄를 속하기 위해 바쳐진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전에 이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대제사장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백성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유일한 요구 사항은 ‘스스로 괴롭게 하라(afflict themselves)’는 것뿐이며, 이는 이후 금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성경은 어떤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어떠한 자격이나 노력 없이 거저 사죄를 얻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용서의 은혜를 반영한다. 단지 스스로를 낮추어 하나님의 용서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은 대제사장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화려한 복장을 입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석이 박힌 흉패가 달린 온전한 예복 대신, 그는 단순한 흰색 세마포 옷과 평범한 관을 착용해야 한다. 이는 모든 외적인 영광을 벗어던지고 하나님 앞에 단순하고 겸손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상징하는 비유와 같다.

오늘날에도 순결과 겸손의 상징으로서 욤 키푸르에 흰옷을 입는 것이 전통으로 남아 있다.

'욤 키푸르'는 대개 '속죄일(Day of Atonement)'로 번역되지만, 영어 단어 'atonement'는 성경 번역가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해 낸 말이다. 즉, '하나 됨(at-one-ment)'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죄가 다루어질 때 우리는 그분과 화목할 수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 '키푸르(Kippur)'는 덮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죄가 덮여 하나님께서 보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야르물케' 또는 '키파(kippa)'의 원리이기도 하다. 즉, 덮개라는 뜻이다.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라고 선포한다. 죄를 완전히 없애기보다 덮는다는 개념은 히브리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심지어 언약궤 자체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 뚜껑은 하나님의 임재를 지키는 그룹 천사 형상들이 제물의 흘려진 피를 목격하는 '카포렛(kapporet)', 즉 속죄소(속죄 덮개)라 불린다.

미슈나(Mishna)에 따르면 대제사장이 매년 그 속죄소 위에 이 모든 짐승들의 피를 일곱 번 뿌렸는데, 역설적이게도 채찍질하는 동작으로 뿌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 피를 위로 한 번, 아래로 일곱 번 뿌렸다. 그리고 그는 피를 위로 뿌리거나 아래로 뿌리려는 의도를 두지 않고, 오히려 채찍질하는 사람처럼 뿌렸다" (미슈나 요마 5장).

바빌로니아 탈무드 요마 55a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한다:

"게마라(Gemara)가 묻는다: '채찍질하는 자와 같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브 예후다는 다른 사람의 등에 채찍으로 매질하는 자처럼 손동작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보이기 위해 영광스러운 예복을 벗어던진 대제사장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진 고된 사역과, 희생 제물로의 죄의 전가는 모두 히브리서가 ‘큰 대제사장’이라 부르는 그분을 가리킨다. 우리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의 죄를 덮을 뿐만 아니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영원히 죄를 치워버리신 바로 그분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국가적인 차원에서든 용서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하여 죄 없는 사람이나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고발과 참소는 대적자 사탄의 전담 업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지만, 고발자는 용서받을 길을 주지 않은 채 죄책만을 지목한다.

세상이 이스라엘의 잘못을 찾아내는 동안, 이스라엘인들 스스로도 서로를 분열시키며 상처를 내고 있다. 비난의 목소리에 가담하거나 내부 다툼에서 분노로 편을 가르는 대신, 우리는 열 번째 전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영적 전쟁이다.

이번 욤 키푸르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로 덮어 주시기를 바란다. 회개와 치유, 용서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과 서로 간의 화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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