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srael
분석 기사

이스라엘의 존재가 근본주의 이슬람에게 신학적 위기인 이유

분쟁의 본질은 결국 국경 문제가 아닌, 유대인의 주권과 예루살렘, 그리고 역사의 향방에 관한 것이다

 
템플 마운트(성전산)의 바위의 돔을 배경으로 게양된 이스라엘 국기. (사진: 셔터스톡)

이스라엘은 호전적 근본주의 이슬람에게 그 어떤 국경선의 조정으로도 결코 최종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영토는 분할될 수 있다. 안보 합의는 협상될 수 있다. 충돌하는 민족적 영유권 주장 역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타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단순한 영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이 조상의 땅에서 주권을 회복했음을 의미하며, 유대 공동체의 수도로서 예루살렘이 부활했음을 뜻하고, 현대 세계 속에 성경의 역사가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음을 상징한다.

역사를 이슬람의 점진적이고 최종적인 승리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이슬람 운동들에게 있어, 이러한 주권 회복은 단순한 정치적 후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학적 모순'이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중동 땅에 살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수 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거주해 왔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유대인들이 '주권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 권력을 쥐고 군대를 지휘하며, 무슬림을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주권을 행사한다. 과거 무슬림의 지배 아래 종속되어 있던 한 민족이, 역사 속 이슬람 제국들이 통치했던 바로 그 영토 위에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유례없는 신학적 도전을 안겨준다. 근본주의 이슬람 사상은 유대인 국가를 역사에 대한 전혀 다른 서사를 진전시키는 '믿지 않는 자들(불신자들)'의 국가로 바라본다.

근본주의 운동들은 이슬람의 권위 있는 원천들이 정치적 삶을 지배해야 하며, 토지와 주권 및 성스러운 영역에 대한 이슬람의 권리는 영구히 포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운동들이 파급력을 미치는 잠재적 대중은 수억 명에 달한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모든 관점에서 볼 때, 이 갈등은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치르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그 '전쟁'의 본질을 고찰하지 않고서는 결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딤미(Dhimmi) 질서의 전복

이슬람 지배하에서 유대인들은 '딤미(Dhimmi)'로 분류되었다. 이 용어는 흔히 '보호받는 백성'으로 번역되지만, 그 보호는 법적으로 강제된 철저한 '종속 체제'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무슬림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인두세인 '지즈야(Jizya)'를 납부하며, 무슬림과 자신들을 구별 짓고 열등한 지위를 각인시키는 각종 제약에 복종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종교 공동체로서의 생존을 허락받았다.

그러한 제약의 가혹함은 통치자와 시대에 따라 달랐으나, 위계 구조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유대인은 이슬람의 권위 아래 살아갈 수는 있었으나, 무슬림 위에 군림하는 권위를 가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종속된 종교 공동체로서 관용의 대상이 될 수는 있었으나, 결코 독립적인 정치·군사 세력이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시오니즘은 바로 이 질서를 뒤엎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단순히 유대인들을 중동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을 '통치자'로 복귀시켰다. 과거의 '딤미'가 주권자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군대를 지휘하고, 무슬림을 통치하며, 주변 이슬람 강국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대한 정치적 통제권까지 장악했다.

근본주의 이슬람 사상에 있어 이러한 역전은 군사적·영토적 손실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알라가 확립한 신성한 위계의 전도(顚倒)다. 핵심 문제는 유대인의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문제는 '유대인의 힘'이다. 유대인이 스스로를 통치하고, 무슬림을 다스리며, 한때 이슬람의 영역(다르 알-이슬람)에 편입되었던 영토 위에서 주권을 행사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신학적 질서에 있어 독보적인 불경이자 모욕이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이슬람의 권위 밖에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존재 자체로 이슬람의 질서를 공개적으로 전복하고 있다.

반복된 패배가 안겨준 굴욕감 역시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슬람은 스스로를 수많은 종교 중 하나가 아니라 알라의 최종 계시이자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예정된 유일한 참된 신앙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광대한 영토와 군대, 막대한 부와 천연자원을 보유한 20억 무슬림 세계가, 어째서 한 줌에 불과한 작은 유대인 국가 하나를 거듭 굴복시키지 못하는가? 더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참된 신앙의 소유자들이 이슬람이 이미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옛 계시를 따르는 백성에게 패배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스라엘의 생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학적 고발이 된다. 만약 이슬람이 최종 진리와 알라의 보증을 지니고 있다면, 어째서 유대인의 주권은 파멸되지 않고 오히려 생존하며, 번영하고, 자신들의 파멸을 꾀하는 자들을 상대로 거듭 승리하는가? 이스라엘이 승리할 때마다, 이슬람이 기대하는 궁극적 승리와 현실 역사의 궤적 사이에 놓인 모순은 더욱 깊어만 간다.

유대인 국가는 역사에 대한 전혀 다른 결말을 선포하고 있는 듯하다. 유대인의 회복과 예루살렘, 그리고 히브리 성경의 약속들이 재건된 칼리프국이 아니라 장차 임할 '메시아 왕국'을 향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 아민 알-후세이니와 알아크사 수호

이러한 신학적 차원은 이스라엘이 공식 건국되기 이전부터 이미 뚜렷이 나타났다.

1921년 영국 위임통치령 하에서 예루살렘의 그랜드 무프티로 임명된 하지 아민 알-후세이니(Haj Amin al-Husseini)는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가 지닌 대중 동원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민족적 열망, 유대인 이민, 토지 문제를 둘러싼 분쟁을 이슬람 신앙 자체를 수호하기 위한 거룩한 투쟁으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선전전 중심에는 유대인들이 성전산을 장악하고 알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하거나 쫓아낸 뒤 자신들의 성전을 재건하려 한다는 선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따라 통곡의 벽을 향한 유대인들의 애착은 유대교에서 접근 가능한 가장 거룩한 성소에서의 기도가 아니라, 이슬람을 겨냥한 음모의 결정적 증거로 둔갑되었다.

1920년대에 걸쳐 통곡의 벽을 둘러싼 긴장은 극에 달했다. 1929년 8월, 유대인들이 이슬람 성소를 탈취하려 한다는 소문은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대대적인 유혈 폭동을 촉발했다. 헤브론에서는 유서 깊은 고대 유대인 공동체가 습격을 당했다. 67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고 집과 회당은 약탈당했으며, 살아남은 공동체는 도시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알아크사가 위험에 처했다"는 선동은 정치적 불안을 종교적 비상사태로 탈바꿈시켰다. 투쟁이 성문화(聖化)되자마자, 유대인을 향한 폭력은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방어 행위로 정당화되었다.

이 프레임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살아남았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하여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의 인질을 납치했다. 하마스는 이 작전의 명칭을 '알아크사 홍수(Al-Aqsa Flood)'로 명명했다.

이 작전명은 해당 공격을 정확히 동일한 신학적 서사 위에 올려놓았다. 이슬람의 성소가 위협받고 있으며, 그 책임은 유대인에게 있고, 무슬림의 폭력은 성스러운 응답이라는 논리였다.

나치와의 사상적 결합

하지 아민 알-후세이니는 유대인 주권을 향한 이슬람권의 적대감과 현대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잇는 핵심적인 가교 역할도 수행했다.

영국 통제 지역을 탈출한 그는 결국 나치 독일에 당도했다. 1941년 11월 베를린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접견한 그는 추축국의 전쟁을 지지했고, 아랍 및 무슬림 대중을 겨냥한 독일의 라디오 선전 방송에 참여했으며, 무슬림들에게 연합군과 유대인에 맞서 싸울 것을 적극 독려했다.

알-후세이니가 나치 독일을 열렬히 포용한 까닭은 유대인 및 영국을 상대로 한 나치의 전쟁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조국이 건설되는 것을 결사 저지하려던 자신의 목표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러한 협력은 이슬람의 오랜 전통적 적대감을 유럽식 인종적 반유대주의 및 음모론적 신화와 결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유대인은 단순히 종교적으로 배척받고 종속되어야 할 백성일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비밀스러운 설계자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서구 지배의 배후에 도사린 보이지 않는 배후 세력으로 규정된 것이다.

이러한 결합은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는 유대인의 민족적 회복에 맞선 국지적 투쟁을, 전 세계를 배후 조종한다고 여겨지는 유대인 음모론에 대항하는 '세계적 성전'의 일환으로 포장할 수 있는 언어적 도구를 제공해 주었다.

하마스와 마지막 때의 예언

하마스는 제1차 인티파다 당시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에서 태동했다. 하마스의 1988년 창립 헌장은 팔레스타인을 단순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조국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헌장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부활의 날(심판의 날)까지 모든 무슬림 세대에게 신탁된 성스러운 종교 재산, 즉 '이슬람 와크프(Waqf)'로 선포했다. 그 어떤 통치자도, 단체도, 세대도 그 땅의 단 한 치조차 양도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선언이었다.

헌장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오직 이슬람의 주권 아래 복속되어 있을 때에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본질적인 문제는 유대인의 물리적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이슬람으로부터 독립된 유대인의 존재, 그리고 이슬람의 소유로 선언된 토지 위에 군림하는 유대인의 주권이었다.

더 나아가 하마스는 무함마드의 전승(하디스)을 직접 인용하며 이 분쟁을 명백한 종말론적 구도 속에 배치했다.

"무슬림들이 유대인들과 싸워 그들을 죽이기 전까지는 마지막 때(최후의 시간)가 이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돌이나 나무 뒤로 숨으면 그 돌과 나무가 말하기를, '오 무슬림이여, 알라의 종이여, 내 뒤에 유대인이 숨어 있으니 와서 그를 죽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외부의 적들이 하마스에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마스가 자신들의 창립 헌장에 스스로 의도적으로 삽입한 예언이었다.

이로써 하마스는 현대의 대이스라엘 전쟁을 '마지막 때'에 앞서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들의 연속선상에 놓았다. 이스라엘의 파멸은 더 이상 단순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적 목표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성스러운 역사가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 된 것이다.

해당 예언은 싸움의 당사자를 지목하고 충돌의 양상을 묘사하며 그 결말을 공포한다. 무슬림은 유대인과 싸운다. 유대인은 숨으려 발버둥 친다. 피조물 세계 전체가 유대인의 위치를 폭로하며 무슬림을 돕는다. 무슬림의 승리는 수많은 정치적 결말 중 하나가 아니라, 역사가 종착역을 향해 반드시 나아가는 불가피한 섭리로 제시된다.

하마스는 이로써 종말론적 전승을 현대의 혁명적 강령으로 탈바꿈시켰다. 하마스의 전투원들은 스스로를 단순한 영토 분쟁의 군인이 아니라, 예언자 무함마드가 예고했던 성스러운 투쟁의 직접적인 참여자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하마스는 종교로서의 유대인이 아니라 '시오니스트 프로젝트'와 싸우는 것이라는 정치적으로 보다 정제된 정책 문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문서 역시 요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분할 불가능한 하나의 영토로 규정했고,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인정하기를 전면 거부했으며, 해방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무장 투쟁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외부를 향한 수사는 바뀌었을지언정, 영구적인 유대인 주권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금기는 단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청사진으로서의 카이바르(Khaybar)

카이바르(Khaybar)를 소환하는 행위 역시 성스러운 역사에 대한 동일한 인식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서기 628년, 무함마드와 그의 군대는 유대인의 요새 오아시스 도시였던 카이바르를 공격하여 정복했다. 유대인 수비대원들은 살해당했고 공동체의 정치적 독립은 파괴되었으며, 살아남은 주민들은 무슬림의 지배하에 놓여 수확물의 절반을 바쳐야 했다. 이후 남아 있던 유대인들마저 칼리프 우마르 통치 시기에 완전히 추방당했다.

근본주의 무슬림들에게 있어 카이바르는 역사적 사건과 분리된 단순한 비유적 상징이 아니다. 무함마드의 행적은 신의 인도를 받은 불변의 선례(Sunnah)를 구성한다. 알라가 무함마드의 생애 속 사건들을 주관하신 까닭은 후대 세대가 이를 인식하고 그대로 따라야 할 영원한 모범을 주기 위함이라는 믿음이다.

따라서 카이바르는 현대 분쟁의 역사적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유대인 부족들과의 대결에서 무함마드가 보인 행보는 오늘날 무슬림 전사들에게 부활한 유대인의 힘과의 대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유대인들은 다시금 요새화된 영토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다시 군사적·정치적 권력을 쥐었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군대는 반드시 돌아와야 하며, 예언자의 선례를 따라 동일한 승리를 거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 악명 높은 구호의 본질적인 의미다.

"카이바르, 카이바르, 오 유대인들이여, 무함마드의 군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Khaybar, Khaybar, ya yahud, jaish Muhammad soufa ya'oud)

이 구호는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유대인의 단순한 상징적 표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카이바르의 역사가 다시금 그대로 재현되어야 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역들이 다시 돌아왔고, 상황은 다시 조성되었으며, 무함마드가 남겨놓은 성스러운 선례가 행동을 위한 명확한 청사진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자신들의 전략 무기 중 하나에 바로 이 사상을 그대로 형상화했다. 2022년,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케이바르 셰칸(Kheibar Shekan)', 즉 '카이바르 파괴자(Khaybar Breaker)'라는 명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전격 공개했다. 이스라엘 본토를 사정권에 둔 이 무기에는 유대인 요새를 함락시켰던 무함마드의 정복 역사의 이름이 그대로 붙었다.

이 명칭은 7세기의 성스러운 역사와 21세기의 첨단 미사일전을 직접 연결한다. 미사일이라는 무기 자체가 이 분쟁을 바라보는 이란의 시각을 웅변한다. 이스라엘은 현대에 부활한 유대인의 새로운 요새이며, 이슬람 혁명군은 다시 돌아온 무함마드의 군대이고, 카이바르는 그들을 격멸할 승리의 모범을 제시한다는 논리다.

신성한 역사적 선례로 출발했던 것이 혁명적 교리로 변모했고, 마침내 현대의 파괴적인 무기로 주조된 것이다.

수라 알-이스라와 유대인의 귀환

꾸란 17장인 '수라 알-이스라(밤의 여정)'—'수라 바니 이스라일(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도 불린다—는 현대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해석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이 수라의 4절부터 8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상에서 부패를 퍼뜨리고, 그에 따라 그들을 치기 위해 보내진 강력한 종들에 의해 두 번에 걸쳐 심판을 받는 과정을 묘사한다.

"너희는 반드시 지상에서 두 번 부패를 일으킬 것이며, 심히 거만해질 것이다."

정해진 심판의 때가 이르면, 알라는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종들을 보내 그들을 징벌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힘을 회복한 뒤 다시금 타락에 빠지면 또 다른 심판이 뒤따르게 된다.

근본주의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현대의 이스라엘에 직접 대입한다. 이 독법에 따르면, 유대 민족은 오늘날 다시 모여들었고, 다시 권력을 쥐었으며, 다시금 지상에서 불의와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따라서 알라는 그들을 심벌하기 위해 또 다른 군대를 일으키실 것이라는 논리다.

이스라엘을 향한 군사적 승리는 단순한 세속적 염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신성한 심판의 약속된 성취가 된다. 무슬림 전사들은 스스로를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징벌하기 위해 알라에 의해 세워진 종들로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완벽히 닫힌 신학적 체계를 형성한다. 이스라엘의 번영과 성취는 유대인의 오만과 부패의 증거가 된다. 이스라엘을 향한 폭력은 신적 심판을 집행하는 거룩한 도구가 된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거두는 승리조차 알라가 정해놓은 최종적 파멸에 앞서 허락된 일시적인 단계로 합리화된다.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역사의 올바른 순리를 거스르는 반역으로 규정되는 세계관 앞에서는, 그 어떤 외교적 협상이나 평화 협정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란과 시아파 혁명 전선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여기에 뚜렷한 시아파적 차원과 제국주의적 야망을 덧입혔다.

이란 정권은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전략적 야욕과 1979년 이슬람 혁명의 교리를 결합했다. 이란 헌법은 전 세계적인 사명을 명시하며, 이슬람공화국이 국경 너머의 이슬람 및 혁명 운동을 적극 지원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테헤란 당국은 혁명수비대를 통해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 하마스,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그리고 예멘의 후티 반군을 아우르는 거대한 군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란은 페르시아계이자 압도적인 시아파이며, 하마스는 아랍계 수니파 조직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뿌리 깊은 종파적 차이는 이스라엘 및 이를 지탱하는 서구 질서에 대항하는 '공동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철저히 종속된다.

12이맘 시아파 신학은 말세에 신성한 정의를 구현할 숨겨진 이맘, 즉 '마흐디(Mahdi)'의 재림을 고대한다. 이슬람공화국은 스스로를 이슬람의 미래를 예비하는 전위 혁명 국가로 규정하며, 이스라엘은 종국에 지워져야 할 불법적인 '시오니스트 정권'으로 낙인찍는다.

이로써 이란의 군사 전략, 제국주의적 패권 야망, 그리고 시아파 종말론은 서로를 완벽하게 보동하고 강화한다. 이스라엘의 파멸은 단순한 지정학적 승리로 축하받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슬람 혁명이 역사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신학적 증거로 선포될 것이다.

반시오니즘이라는 소련의 언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대결 구도 위에 또 하나의 이념적 지층이 덧씌워졌다.

이스라엘이 서방 진영과 밀착하고 특히 1967년 6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소련은 전 세계를 무대로 방대한 반시오니즘 선전 공작을 전개했다. 시오니즘은 인종차별, 파시즘, 식민주의,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묘사되었다. 소련의 선전가들은 낡은 반유대주의 음모론을 '혁명적 해방 투쟁'의 세련된 언어로 재포장했다.

전직 정보 당국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른바 'SIG 작전'으로 알려진 KGB의 대대적인 기만 공작은 아랍 및 무슬림 세계를 이스라엘과 미국을 상대로 극단적으로 선동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소련의 선전전은 이스라엘을 단순히 '이슬람의 적'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서구 패권에 맞서는 '모든 혁명 운동의 공공의 적'으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제 호전적 근본주의 이슬람은 두 개의 언어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들의 내부 종교적 대중을 향해서는 지하드, 이슬람 영토(와크프), 알아크사, 카이바르, 신의 심판, 그리고 마지막 때의 언어로 설파했다. 반면 서구 사회와 국제무대를 향해서는 식민주의, 아파르트헤이트, 민족 해방,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진보적 언어를 구사했다.

유대인이 반드시 이슬람의 주권 아래 종속되어야 한다는 고대의 종교적 요구는, 이로써 세속적인 해방 투쟁의 탈을 쓰고 서구의 학계와 국제기구 속으로 매끄럽게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의 힘에 대한 신학적 거부감이, 유대인 국가를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하게 불법적인 국가 형태로 규정하고 해체해야 한다는 현대 정치적 요구로 탈바꿈한 것이다.

붉은 암송아지와 알아크사 홍수

미국 텍사스에서 극소수의 붉은 암송아지가 이스라엘로 공수된 사건을 둘러싼 거대한 파장은, 성경적 회복과 이슬람의 신학적 불안이 얼마나 깊숙이 얽혀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히브리 성경(민수기 19장)에서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성전 제의를 위한 정결 의식과 직결된다.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 운동가들은 이러한 정결 예식이 장차 회복될 성전 제사를 준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다.

2024년 1월, 하마스의 군사 대변인 아부 우바이다(Abu Ubaida)는 '알아크사 홍수' 기습 작전의 배경을 설명하는 공식 연설에서 바로 이 붉은 암송아지들의 반입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이를 알아크사 모스크와 무슬림 움마(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종교적 도발로 규정했다.

그 신학적 의미는 명백하다. 하마스에게 있어 유대인의 회복은 단순한 이민, 국가 건국, 혹은 예루살렘에 대한 정치적 통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국적으로 성전을 가리킨다. 성전은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리고 메시아는 예루살렘이 회복된 이슬람 제국의 수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왕국의 중심'이 되는 역사의 종말론적 결말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성전산이 이 분쟁에서 가장 폭발성이 강한 뇌관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곳은 역사를 바라보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거대한 서사가 물리적으로 정면충돌하는 현장이다.

분화구를 틀어막고 있는 이교도 주권자

이스라엘은 호전적 근본주의 이슬람에게 있어 그저 수많은 적들 중 하나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그 패배가 곧 자신들의 전체 신학적 체계의 절대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선포될 수 있는 궁극의 적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재정복되며, 유대인의 주권이 종말을 고한다면, 그 승리는 결코 작은 영토 하나의 해방으로 축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슬람이 유대인을 굴복시켰고, 서구를 몰아냈으며, 성스러운 유산을 되찾아 단절되었던 이슬람 역사의 진군을 다시 재개했다는 징표로서 무슬림 세계 전역에 선포될 것이다.

그 파장은 결코 이스라엘 국경 안에 머물지 않는다.

아랍 정규군도, 세속 혁명 정부도, 수많은 지하드 조직들도 지난 수 세대 동안 이루지 못했던 과업을 달성한 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종교적·정치적 정통성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알라가 자신들을 통해 역사하셨으며, 서구 패권의 시대는 마침내 끝났고, 더 넓은 옛 이슬람 영역 전체의 탈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선언할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지금 거대한 이념적 화산의 분화구를 홀로 틀어막고 있는 형국이다.

이스라엘의 존재는 이슬람 정복의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교리를 무력화한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호전적 근본주의가 신학을 곧바로 침략 정복으로 치환하지 못하도록 저지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이스라엘의 통제권은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선지자들과 히브리 성경을 관통하고 장차 임할 메시아 왕국을 향해 나아가는, 경쟁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서사를 생생하게 열어두고 있다.

영토라는 세속적 언어의 밑바닥에는 '주권'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주권의 밑바닥에는 '성스러운 역사'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역사의 밑바닥에는 외교나 군사적 억지력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 답을 내릴 수 없는 근원적인 물음이 버티고 있다.

과연 예루살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그리고 다가올 역사의 다음 시대를 정의할 서사는 과연 어느 쪽의 이야기인가?

Selected Sources

  • Report of the Commission on the Palestine Disturbances of August 1929, commonly known as the Shaw Commission Report.

  •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Hajj Amin al-Husayni: Wartime Propagandist.”

  • Covenant of the Islamic Resistance Movement, 1988.

  • Hamas, A Document of General Principles and Policies, 2017.

  • Sahih Muslim, Book of Tribulations and Portents of the Last Hour, Hadith 2922.

  • Qur’an 17:4–8, Surat al-Isra or Surat Bani Isra’il.

  • Norman A. Stillman, The Jews of Arab Lands: A History and Source Book.

  • Bernard Lewis, The Jews of Islam.

  • Shaul Bartal, “Reading the Qur’an: How Hamas and the Islamic Jihad Explain Sura al-Isra (17),” Politics, Religion & Ideology 17, no. 4 (2016): 392–408.

  • Reuters, “Iran Unveils Missile with Range of 1,450 km,” February 9, 2022.

Read more: 이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