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믿음이 없는 상태로 고향에 돌아왔다 –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의견 블로그 / 게스트 칼럼니스트 에미르 필립스 | 2025년 12월 22일 ALL ISRAEL NEWS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와 분석을 위해 노력하며, 다양한 의견을 게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게스트 칼럼니스트가 표현한 견해는 반드시 본사 직원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민족이 메시아를 향한 회심에 앞서 유대인의 땅으로의 귀환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믿음이 없는 귀환”은 복음주의자들이 새로운 반유대주의에 맞서고, 어떤 정부도 낭만화하지 않으며, 이스라엘과 그 이웃들을 위해 더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세속적인 이스라엘 친구가 북미에서 성공적인 삶을 꾸렸음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이라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종교인이 아니다. 정착민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전쟁과 정치에 지쳐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거의 사과하듯 말했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마치 자석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거기에 속해 있다고 느껴져요.”
그 “자석”은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가족, 히브리어, 역사, 트라우마, 문화 — 그리고 성경이 진실이라면,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의 이야기가 특히 ALL ISRAEL NEWS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대부분 믿음이 없는 상태로 고대 땅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예슈아를 메시아로 고백하지 않으며, 많은 이들이 세속적이거나 느슨하게 종교를 실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년의 흩어짐 끝에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 홀로코스트 이전과 거의 비슷한 수로, 성경이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바로 그 좁은 땅에 말이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뉴스 헤드라인을 따라가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 10월 7일의 트라우마부터 계속되는 말과 로켓의 전쟁까지 — 귀환과 불신앙의 이 조합은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선지자들에게는 예상된 일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에 생긴 결함이 아니다. 시나리오의 일부다.
쇼아의 그림자 속 인구학적 기적
1939년 홀로코스트 직전,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약 1,660만 명이었다. 대다수는 유럽에 거주했다. 6년 후 나치 학살 기계와 그 협력자들의 만행이 끝난 뒤 남은 유대인은 약 1,100만 명에 불과했다. 유대인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학살당한 셈이다.
그로부터 거의 8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최근에야 전쟁 전 최고치에 근접했다. 이스라엘 쥬이시 에이전시(Jewish Agency for Israel)의 2023년 분석과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유대인은 약 1,57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약 720만 명(전 세계 유대인의 약 46%)이 이스라엘에 거주한다.
이후 업데이트된 자료는 이 추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로쉬 하샤나(유대력 새해) 직전,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580만 명으로 추정되었으며, 이 중 약 730만 명이 이스라엘에, 630만 명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전 세계 유대인의 약 46%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대조적으로 1939년 당시 영국 위임 통치령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인은 전 세계 유대인의 약 3%에 불과했으며, 이는 50만 명 미만이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유대인이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 중앙통계청 자료에 따르면(이스라엘 공식 포털 및 i24News 등 매체 요약), 최근 이스라엘 인구는 약 990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 중 740만 명 이상이 유대인이다.
한 세대 안에 유대 민족은 주로 유럽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땅에 작은 발판을 두고 있던 민족에서, 가장 크고 역동적인 공동체가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온 민족으로 변모했다. 이스라엘은 이제 유대인 미래의 인구학적 동력이 되었다.
1939년, 심지어 1945년 당시에도 정직한 역사가라면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2,500~2,700년 전에 기록한 히브리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땅 끝까지 흩어뜨리신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미래를 묘사했다.
죽지 않는 언약
이 이야기는 1948년이 아니라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부르시며, 그를 큰 민족으로 삼고 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며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1-3).
이 약속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서 비준되고 창세기 17장에서 재확인된 언약으로 스스로를 그 약속에 묶으셨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존재와 유대 민족이 그 땅과 맺은 독특한 유대는 유엔의 투표가 아니라 바로 그 언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세기 후 모세는 지속적인 반역이 추방이라는 엄중한 심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여호와께서 너희를 온 땅 끝에서부터 끝까지 모든 민족 가운데 흩으시리라…”— 신명기 28:64
그러나 바로 그 모세는 유배 이후의 자비에 대해서도 말했다:“…그때에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너희의 운명을 회복하시고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흩으신 모든 민족 가운데서 다시 너희를 모으시리라.”— 신명기 30:3
이스라엘을 징계로 흩으시는 하나님은 또한 은혜로 그들을 다시 모으시리라 약속하신다. 흩어짐은 현실이다. 귀환 또한 현실이다. 선지자들은 이 두 번째 귀환을 보았으며, 불신앙도 보았다. 이사야는 모세의 주제를 이어받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훨씬 넘어선 미래를 내다본다. 그는 주님께서 이렇게 하실 미래를 예견한다:“열방에게 깃발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을 모으시며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땅 끝에서부터 모으시리라.”— 이사야 11:12
이는 단순히 한 제국에서 돌아온 비교적 소수의 포로 귀환인 바벨론 귀환이 아니다. 이사야는 “땅 끝에서” 전 세계적인 재집결을 말하며, 이는 이사야 11:1-10의 메시아 통치와 밀접히 연결된다. 에스겔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로 동일한 주제를 발전시킨다. 에스겔 36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백성을 번성하게 하시며, 파괴된 성읍들을 재건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오직 그들이 땅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들에게 깨끗한 물을 뿌려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며, 그들 안에 자신의 영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다(겔 36:24–27). 이어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골짜기 이야기가 나온다. 에스겔은 흩어진 뼈들이 모여지고, 힘줄과 살이 덮이는 것을 본다. 그 후에야 생명의 숨결(루아흐)이 그들 안에 들어와 거대한 살아있는 군대로 서게 된다. 유대인과 기독교 독자 모두 오랫동안 이 장면에서 두 단계의 회복을 보아왔다:
1. 유대 민족이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육체적으로 고향 땅으로 재집결하는 단계와 — 뼈와 힘줄, 영적 생명 없는 국가적 몸.
2.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믿음으로 이끄시는 영적 갱신 단계.
이 렌즈를 통해 현대 이스라엘을 바라보자:
-“땅의 사방”에서 재집결한 민족,
-오랫동안 황폐하고 분쟁이 있는 땅으로,
-고대 히브리어를 다시 현대어로 사용하며,
-그러나 대부분 세속적이거나 메시아를 믿지않는 민족.
이것은 에스겔이 묘사한 첫 번째 단계와 놀랍도록 유사해 보인다.
“이건 단지 정치 아닌가?”
이 시점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반문한다: “당신은 단지 현대의 헤드라인을 고대 예언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게 아닌가? 이스라엘 국가는 벨기에나 브라질 같은 또 다른 현대 국가에 불과한 것 아닌가?”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그렇다, 이스라엘은 세속 정부를 가진 현대 국가이며, 실수하는 지도자와 실제적인 죄악이 존재한다. 어떤 크네세트 연정도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성경은 결코 모든 정책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사실들의 결합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산 상태로 2천 년 동안 보존된 민족,
-유럽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의 학살 시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된 동일한 땅으로의 귀환,
-히브리어의 구어로서의 부활,
-그리고 이제 세계 유대인의 거의 절반이 그 땅에 거주하는 현실.
성경적 관점에서 이는 신명기, 이사야, 에스겔이 예언한 하나님의 계획—흩어짐과 보존, 재집결—과 정확히 일치한다. 쥬이시 에이젼시의 발표 자료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의 보도를 뒷받침하는 세르지오 델라페르골라 교수 같은 인구통계학자들은 현재 전 세계 유대인의 약 46%가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약 630만 명이 미국에 거주한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이는 놀라운 일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익숙한 일이다.
믿음 없이 돌아옴: 문제가 아니라 예언
많은 신자들이 여기서 걸려 넘어진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부활이 예언적 의미를 지닌다면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의로워야 하며,
그 정책은 공정해야 하며,
그 백성은 이미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실, 예언적 패턴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먼저 돌아옴이 있고, 그 다음에 회개가 따른다.
신명기 30장에서는 회개와 재집결이 서로 얽혀 있지만, 본문은 분명히 이미 추방의 저주를 경험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한다.
에스겔 36–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아직 열국 가운데서 그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을 때, 그들을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을 변화시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다.
스가랴 12:10에서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마음을 부어 주실” 때에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이미 그 땅에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이 “그들이 찌른 자 곧 나를 바라보게” 되고 애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신약성경도 동일한 패턴을 확인해 준다.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현재 불신앙과 씨름하면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로마서 11:29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현재의 부분적인 굳어짐이 “이방인의 가득한 수가 이루어질 때까지”(롬 11:25) 지속될 것이라고 묘사한 후, 미래에 민족 전체가 메시아께로 돌아설 것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요.”
— 로마서 11:26
성경은 종합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기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이 땅으로 돌아와,
여전히 대부분 불신앙 속에,
강렬한 압박 아래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실 때까지 신비롭게 보존되는 시기.
이것이 우리가 세속적인 이스라엘 엔지니어를 만나거나, 회의적인 텔아비브 예술가를 만나거나, 하이파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만날 때 느끼는 긴장이다 — 육체적으로는 고향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펼쳐지는 계획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반유대주의의 새로운 가면
이 예언적 그림은 이스라엘의 귀환뿐만 아니라 열방의 분노에 관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반유대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미국에서만 반유대주의 사건 감사 기관인 반유대주의 반대 연맹(ADL)의 2024년 반유대주의 사건 감사에 따르면, 괴롭힘과 파괴 행위, 폭행 등 9,354건의 사건이 기록되었다. 이는 하루 평균 25건 이상으로, 1979년 기록을 시작한 이래 최고 수준이며 지난 10년간 거의 9배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사건의 상당수가 이스라엘과 시온주의에 대한 분노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많은 캠퍼스 및 거리 시위가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서 이스라엘의 소멸을 요구하고 테러 단체를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수준으로 변질되었다.
유럽 및 글로벌 감시 기관들도 유사한 급증을 보고한다: 유대인 학교와 회당이 위협을 받고, 유대인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서방 수도들에서는 이스라엘의 소멸이 도덕적 이상인 양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구호가 외쳐지고 있다.
ALL ISRAEL NEWS는 이러한 추세와 반시온주의가 그렉 데넘의 표현대로 “젊은 복음주의자들을 감염시키는 이념적 바이러스: 반시온주의가 반그리스도인 이유”가 된 방식을 기록해왔다. 18~29세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이에 대해 순진하지 않았다. 시편 83편, 에스겔 38-39장, 스가랴 12장은 모두 이스라엘에 대한 극심한 적대감이 고조되는 시기를 묘사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변호하시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다.
우리는 모든 헤드라인을 특정 예언 도표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성경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가장하는 것도 성경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상처 입은 백성이,
분쟁이 계속되는 땅으로 돌아와,
전 세계적으로 재점화된 증오에 직면하는 것이,
성경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상한 “우연”이라고.
이것에 우리가 대처해야 할 다섯 가지 방식
그렇다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매일 이스라엘 소식을 따라가는 이들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1. 대체 신학과 값싼 초월주의를 거부하라
신약성경은 결코 “하나님이 민족적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끝내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들을 향해 교만해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너희가 아니라, 오히려 뿌리가 너희를 지탱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 로마서 11:18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지워버리는 어떤 신학도 바울의 신중한 논증과 모순된다.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의 모든 결정을 의로운 것으로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되지만,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지워졌다고 가장해서도 안 된다.
ALL ISRAEL NEWS는 이미 “지우고 대체하는” 신학과 교회 내 새로운 반시온주의에 대한 강력한 정정 기사를 실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 현대 기적 속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렉 데넘의 ”지우고 대체하라: 대체 신학의 거짓말 — 그리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계획에서 지우려는 시도"
최신 해시태그가 아닌, 당신의 성경이 당신의 범주를 정해야 한다.
2. 정치가 아닌 십자가를 중심에 두라
섭리론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복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유대인들도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메시아 예슈아 안에서 구원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알게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본질을 잃은 것이다.
동시에 유대인들의 실제적인 고향 귀환을 무시하는 ‘영성화된’ 신학은 신약성경을 구약성경의 뿌리에서 떼어 놓는다. 사도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한 약속이 여전히 중요한 세상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
3.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에 맞서라
극우 극단주의자, 극좌 급진주의자, 이슬람주의 이념가, 혼란스러운 학생들로부터 반유대주의가 고조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먼저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의 모든 결정을 지지할 필요는 없고,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유대인 학생들이 우리 캠퍼스에서 안전해야 하며,
유대인 기관들이 보호받아야 하며,
유대인 이웃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인구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민족이 뉴욕이나 파리, 런던, 로스앤젤레스에서 안전할지 걱정해서는 않된다.
4. 유대인을 예언 도표의 소품이 아닌 이웃으로 대하라
교실의 유대인 학생, 줌 회의의 이스라엘 동료, 길 건너 홀로코스트 생존 노인 — 이들은 '시대의 징조'가 아니다. 깊은 세대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인간이다.
일부는 교회의 오랜 반유대주의 역사 때문에 기독교인을 경계한다. 잘 경청하고, 잘 사랑하며, 겸손히 예슈아를 나누는 것이 그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두 존중하는 길이다.
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하소서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바빌론, 로마, 중세 박해, 포그롬, 쇼아, 10월 7일 사건, 현대 지하디스트 테러 속에서도 보존하시고, 2천 년 만에 그들을 같은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하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실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결코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믿음 없는 고향” — 그리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낭만적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는 깊이 분열되어 있다. 많은 젊은 이스라엘인들은 세속적이거나 환멸을 느끼고 있다. 10월 7일의 충격과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 단체들과의 지속적인 갈등은 사회에 고통스러운 도덕적·영적 질문들을 남겼다.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양측의 진정한 고통과 불의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유대인 귀환의 예언적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면에서 그 의미를 강화시킨다.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예언했다:
땅으로 돌아온 백성이,
여전히 죄와 불신앙과 씨름하며,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과 논쟁하며,
그러나 저항할 수 없이 고향으로 이끌려 모든 역경 속에서도 보존되며,
미래에 쏟아질 은혜를 기다리는 민족.
바로 이것이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이다.
뼈들이 모여들었다. 힘줄과 살이 붙었다. 약속의 땅에서 몸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의 숨결—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갈망하는 그 위대한 메시아로의 회심—은 아직 앞날에 있다.
지금으로서는 유대인들이 예언자들이 말한 그대로 불신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왔다.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이 현실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경외심을 깊게 하고 기도를 더욱 간절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저녁 뉴스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세대에 살고 있다.
올바른 반응은 추측이 아니라 예배와 회개, 그리고 “유대인에게 먼저,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로마서 1:16) 복음을 선포하려는 새롭게 다져진 열정이다. 믿음 이 없는 채로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데려오신 분이, 그분의 때에 그들을 완전히 자신께로 데려오실 것을 신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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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르 필립스
에미르 J. 필립스는 금융학 교수이자 작가로, 성경 신학과 성경 속 이스라엘에 대한 오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구약과 신약의 예언적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복음주의자들이 신중한 해석, 특히 신명기 30장, 에스겔 36-37장, 스가랴 12장, 로마서 9-11장 같은 구절들을 통해 현대 사건들을 읽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Emir J. Phillips is a finance professor and writer with a longstanding interest in biblical theology and Israel in Scripture, with a focus on the prophetic storyline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His work aims to help evangelicals read contemporary events through careful exegesis—especially passages such as Deuteronomy 30, Ezekiel 36–37, Zechariah 12, and Romans 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