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srael
all israel 학술

아람어: 제국의 흥망성쇠를 넘어 살아남은 언어

 
튀르키예 모르 가브리엘 교회 내부에 있는 성서 아람어. (사진: Shutterstock)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사절이 유다 왕국의 수도이자 포위당한 도시 예루살렘 성문 아래에 서서 히브리어로 주민들을 위협했다.

그러자 유다의 관리들이 소리쳐 말했다.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알아듣겠나이다. 성벽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말씀하지 마옵소서.” (열왕기하 18:26)

왜 하필 아람어였을까? 아시리아인들은 아카드어를 사용했고,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다마스쿠스의 언어였던 아람어가 예루살렘에서 왜 중요했을까?

아람어는 오늘날의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 거주하던 아람 부족들의 언어였다. 창세기 31장 47절을 보면 라반도 아람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증거로 쌓은 돌무더기를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Jegar Sahadutha)라고 불렀고, 야곱은 같은 돌무더기를 히브리어로 갈르엣(Gal’ed)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1200년경, 지중해 동부 대부분 지역에서 거대한 문명 붕괴가 일어났다. 이른바 ‘후기 청동기 시대 붕괴(Late Bronze Age collapse)’다. 이 사건은 아람 부족들이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통일된 아람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아람 왕국들과 아람어를 사용하는 도시국가, 무역망이 서로 연결된 형태로 존재했으며, 이들은 점차 내륙으로 확산됐다. 이는 언어와 무역망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 서쪽으로 확장된 페니키아인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 시기는 대략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와 다윗·솔로몬 왕국 시대에 해당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별개의 왕국으로 분열됐을 당시 다마스쿠스는 강력한 지역 왕국이었다. 다마스쿠스는 때로 북이스라엘 왕국을 위협했고, 때로는 지배하기도 했다.

열왕기하에 등장하는 아합과 벤하닷의 전쟁, 하사엘 왕,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나병을 치료받은 아람 군대 지휘관 나아만의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펼쳐진다.

이는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가 중동을 정복했을 당시 이미 아람어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상인과 외교관 모두에게 유용한 언어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다 관리들은 아시리아 사절에게 아람어로 말해 달라고 간청했다. 왕과 관리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반 백성들에게 히브리어로 말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사절은 이를 무시했다. 그의 목적은 백성들이 왕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시리아는 제국 서부 지역에서 아람어를 유용한 공용어로 채택했다. 아람어가 이미 널리 정착된 언어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아람어는 놀라운 혁신 기술을 활용해 기록됐다. 바로 알파벳이었다.

아카드어의 설형문자 체계에는 수백 개의 기호가 있었고, 이집트 상형문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일반적으로 점토판에 기록됐으며, 서기관이 이를 능숙하게 익히려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반면 아람어는 페니키아인들이 사용하던 22개 글자의 알파벳 체계를 받아들였으며, 양피지나 파피루스 위에 잉크로 글을 썼다.

아시리아가 아람인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이후, 아람어는 훨씬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 결과 제국 안에서 아카드어와 함께 아람어도 점점 더 많이 사용됐다.

이러한 상황은 바빌로니아가 니네베를 파괴하고 아시리아 제국을 장악한 뒤에도 이어졌다.

유다 왕국은 아시리아의 공격을 견뎌냈지만, 115년 뒤 바빌로니아에 결국 굴복했다.

바빌론으로 유배된 많은 유다인들은 아람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받아들였으며, 이러한 흐름은 페르시아 통치 시대에도 계속됐다.

다니엘서와 에스라서의 상당 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는 오늘날의 이집트에 해당하는 엘레판티네부터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박트리아에 이르기까지,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아람어로 작성된 기록들이 발견된다.

아람어의 부상은 유대인들의 문자 사용 방식도 바꿔놓았다.

고대 히브리어는 원래 오늘날 ‘고대 히브리 문자(Paleo-Hebrew)’라고 부르는 문자로 기록됐다.

그러나 페르시아 통치 아래에서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기록할 때조차 제국에서 사용되던 아람 문자를 점점 더 많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로 이 문자 체계가 점차 발전해 오늘날 사용되는 네모난 형태의 히브리 문자가 됐다.

같은 아람 문자 계열에서는 오늘날에도 아시리아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시리아 문자가 탄생했다. 또 다른 갈래인 나바테아 문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랍 문자로 발전했다.

따라서 아람 문자는 히브리 문자와 시리아 문자, 아랍 문자 모두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사해문서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의 히브리 문자와 비슷한, 아람 문자에서 유래한 새로운 사각 문자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YHWH만큼은 고대 히브리 문자로 보존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의 이름만 골동품 같은 옛 글꼴로 적어놓은 것과 비슷하다.

제2성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가지고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아람어는 이미 많은 유대인의 일상 언어가 돼 있었고, 히브리어는 종교와 예배의 언어로서 지위를 유지했다.

한때 일반 유다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외교관들이 사용했던 아람어가 이제는 유대인들의 일상 언어가 된 것이다. 반면 히브리어는 종교와 문학 분야에서 특별한 권위를 유지했다.

기원전 8세기의 상황이 거의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등장했다.

그다음에는 로마인들이 왔다.

예수는 여러 언어가 복잡하게 공존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예수 시대의 유대인 상인이라면 가족과는 아람어로 농담을 주고받고, 히브리어로 기도하거나 성경을 공부하며, 외부인과 거래할 때는 그리스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뿌리 깊게 정착한 아람어와 함께 그리스어도 여러 영역에서 지배적인 국제 공용어가 됐다.

히브리어 역시 일부 공동체와 상황에서는 여전히 구어로 사용됐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예수가 “탈리타 쿠미(Talitha Kumi)”, “아바(Abba)”, “에프타하(Eftaha)” 같은 표현을 통해 아람어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예수 시대 유대인들의 아람어는 기본적으로 히브리어를 기록하는 데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유대식 사각 문자로 쓰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문자는 본래 아람어 알파벳에서 유래했다.

제2성전이 파괴된 이후 아람어는 랍비 유대교의 핵심 언어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유대교를 공부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람어를 배워야 한다.

유대교 안에서 아람어의 지위는 히브리어 다음으로 높다.

아람어는 카디시 기도문의 언어이자, 성경을 고대 아람어로 번역하고 해석한 타르굼(Targums)의 언어다.

두 탈무드는 모두 아람어와 히브리어가 혼합된 형태로 기록됐다. 집필자들은 두 언어에 능통했으며, 독자들 역시 두 언어를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탈무드는 심지어 최초의 인간 아담이 사용한 언어가 아람어였다는 전승까지 보존하고 있다(산헤드린 38b).

그러나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아람어도 히브리어의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당시의 히브리어 역시 아람어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아람어는 기독교의 위대한 문헌 언어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했다.

동쪽에 거주하던 기독교인들은 아람어의 동부 방언인 시리아어(Syriac)를 사용했으며, 성경도 이 언어로 번역했다.

가장 잘 알려진 번역본은 페시타(Peshitta)로, 오늘날에도 시리아어 전통 교회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페시타가 ‘원래의 아람어 신약성경’을 보존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끔 제기되지만, 페시타의 언어는 예수가 갈릴리에서 사용했을 언어와는 다르며, 일반적으로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번역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보다 앞선 시리아어 복음서 번역본들도 존재했다.

이슬람의 정복 이후 레반트 지역 대부분에서는 아랍어가 아람어를 대체했다. 그러나 아람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에서 사용되는 레반트 아랍어 방언의 독특한 단어와 표현 상당수에는 아람어의 영향이 깊이 남아 있다. 특히 전통 농업 용어와 도구, 음식, 지명에서 이러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무슬림의 통치 아래에서도 살아남은 시리아계 및 칼데아계 기독교 공동체들은 아람어의 시리아어 방언을 예배 언어로 유지했다.

고립된 일부 지역과 마을에서는 아람어가 일상 언어로 계속 사용됐으며, 마알룰라(Maaloula) 같은 마을에서는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가운데 많은 곳이 시리아 내전이나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심각하게 파괴되거나 완전히 사라졌다.

서방 세계로 피신한 주민들의 후손들 역시 젊은 세대에 이 언어를 계승하는 데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이스라엘에서 아람어는 영어에서 라틴어가 수행하는 역할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자매 언어로서 학술적이거나 법률적인 표현, 또는 다소 격식 있는 어휘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세 가지와 관련된 표현에 라틴어 접두사 “tri-”를 사용한다. 세 언어를 구사한다는 뜻의 trilingual, 삼각형을 뜻하는 triangle, 철인3종경기를 뜻하는 triathlon 등이 그 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어에서는 아람어에서 온 “tlat-”를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한다. ‘3차원’을 뜻하는 “tlat-meimadi”나 ‘세 자리 숫자’를 뜻하는 “tlat-sifrati” 같은 표현이 있다.

히브리어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뜻하는 “mashkanta” 역시 아람어에서 직접 가져온 단어다.

히브리어로 말하면 평범하게 들리는 표현도 같은 내용을 아람어로 말하면 격조 높거나 학술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편으로는… 다른 한편으로는…”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히브리어로 “mitzad echad… mitzad sheni…”라고 한다.

그러나 아람어 표현인 “michad gisa… me’idach gisa…”를 사용하면 마치 히브리대학교의 학식 높은 교수처럼 들리게 된다.

한때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였던 아람어가 이제는 고급스러운 언어가 된 것이다.

반대로 한때 격식 있는 예배 언어였던 히브리어는 일상 언어가 됐다.

마치 예루살렘 성벽 앞에 아시리아 사절이 서 있던 시대 이후 언어의 역사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것과 같다. 당시에는 일반 백성이 히브리어를 사용했고, 외교관들은 아람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아람어 표현 가운데는 현대 히브리어에서 너무나 흔해져 이제는 구어의 일부가 된 것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단어들이 아람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문제’를 뜻하는 “beaya”, ‘사실’을 뜻하는 “uvda”, 그리고 이디시어에서 “dafke”로도 사용되는, 번역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일상 속어 “davka”까지 모두 아람어에서 유래했다.

아람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제국을 세운 적이 없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아람어는 자신을 받아들였던 제국들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성경에서 아람어는 라반과 이스라엘 북쪽의 적들이 사용하던 언어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외교관들의 언어가 됐고, 유대 민족의 일상 언어가 됐으며, 예수가 사용한 언어가 됐다.

또한 랍비들과 기독교 신학자들의 언어가 됐고, 마침내 현대 히브리어와 레반트 아랍어 양쪽에 보이지 않는 언어적 층위로 남게 됐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사절이 예루살렘 성벽 밖에 서 있었을 때, 유다 관리들이 그에게 아람어로 말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바로 성벽 위의 일반 백성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70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매일 아람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길고 먼 여정을 거쳐온 언어는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