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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 에르도안을 친구라고 부르는가?

 
2026년 7월 8일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Michael Kappeler/dpa via Reut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를 전 세계의 적으로 간주한다. 그는 하마스 대원들을 “테러리스트”, “살인자”라고 부르며, 이들의 폭력 행위와 민간인 공격, 인질 억류를 명백히 규탄해왔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는 하마스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지도자를 친구라고 부르며, 자신이 존경하는 강력한 지도자이자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것일까?

트럼프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진정한 위험성을 내심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통제 불가능한 인물이 마음만 먹으면 중동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에르도안을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모습은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격언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척하는 것과 그에게 온갖 훌륭한 자질이 있다고 극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에르도안은 권위주의적 독재자라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거를 조작해 자국의 권력을 강제로 장악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런데 왜 트럼프는 그를 그토록 칭송하는 것일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유엔총회 연설에서 “튀르키예는 하마스 테러 지도부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선전 활동에 자금을 지원하고 반유대주의를 확산시키는 여러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묘사하는 에르도안의 모습은 왜 이토록 다른 것일까? 트럼프의 설명을 들으면 에르도안은 신뢰할 수 있고, 도움이 되며, 심지어 존경할 만한 인물처럼 보인다.

트럼프가 튀르키예 지도자와 좋은 관계를 구축하려는 열망 때문에 에르도안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평화 중재자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트럼프의 열망은 언론인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투옥하고,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며, 튀르키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명예살인이 계속되도록 방치하는 통치자에게까지 미치는 것일까?

금융 부패 혐의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적도 나온다.

“에르도안의 최측근들은 건설, 에너지, 통신, 금융 서비스, 언론 분야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도둑정치 체제는 가장 좋은 사업 기회가 에르도안 정당의 가장 충성스러운 구성원이나 가족 관계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며, 불법 행위나 탈세가 발생해도 드러나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만든다.”

뇌물수수 의혹은 만연해 있지만, 투명성과 책임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법치주의 준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시민들의 삶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려는 민주주의 초강대국과 도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인가?

어쩌면 트럼프는 튀르키예 지도자에게 받은 아첨에 마음을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에르도안은 중동 평화를 중재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칭찬받는 일이 미국 대통령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아니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한 관계 때문일까?

튀르키예는 주요 외교 중재국으로서 입지를 구축하는 데 능숙해졌다. 튀르키예의 영향력은 특정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NATO 병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중요한 안보 구상들을 이끌어냈다. 튀르키예가 NATO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에르도안이 세계 주요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가 이스라엘과 서구 문명의 가장 큰 적들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러시아와 카타르, 베네수엘라, 이란이 포함된다.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모두 에르도안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왔다. 이슬람이라는 종교, 지정학적 공동 목표,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반감 등 공유하는 이해관계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미국이 완전히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가 튀르키예를 자신의 모든 정치적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하마스를 받아들이는 일을 어떤 측면에서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튀르키예가 테러리스트들을 계속해서 “자신들의 땅을 지키는 해방자 또는 저항 전사”로 규정하고 있는데, 트럼프는 이처럼 터무니없는 관점에서 도대체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다는 것인가?

누가 누구를 이용하고 있는가?

튀르키예는 자국 산업이 유럽과의 무역, 투자,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친서방 국가처럼 보이려는 아슬아슬한 균형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한 관찰자의 눈에도 명백하게 드러나는 반서방 정책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권위주의 통치 아래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시민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 자금세탁 의혹이 제기될 정도의 금융 부패까지 고려하면, 튀르키예와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는 유사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트럼프가 에르도안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에르도안이 트럼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공유하는 가치와 윤리에 바탕을 둔 자연스러운 친밀감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거래 중심적이고 다극적인 행위자로서, 위험을 분산하려는 정책을 통해 서방의 전략적 결속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국가”로 묘사돼 왔다. 이런 점에서 튀르키예가 장기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겉으로만 우정과 선의를 가장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에르도안이 언젠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그를 친구이자 훌륭한 사람, 강력한 지도자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트럼프는 지금의 따뜻한 평가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악의적인 미래 목표를 품고 있으며 그 목표가 사악한 정권들과 그 협력자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인물에게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고 잘못된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중동에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야만적인 테러조직을 단지 부당한 일을 바로잡으려는 해방자들로 묘사하는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둬야 한다.

그러한 묘사는 끔찍한 날조일 뿐 아니라, 역사를 뒤틀고 왜곡한 해석을 조장하고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반유대주의와 반이스라엘 정서를 부추기고,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을 정의로운 행위자로 둔갑시킨다.

진실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정직하고 솔직한 지도자라면,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처럼 이중적인 행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선과 악을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구분해 인정해야 하며, 문명사회에는 테러리즘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외교는 평화를 증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에르도안을 친구라고 주장하는 경우처럼, 외교가 결코 악을 선이라 부르거나 선을 악이라 부르는 구실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이 기사는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에 처음 게재됐으며, 허가를 받아 재게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