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처벌하지 않으면 당신들을 응징하겠다”
관료주의 정부들이 대중을 통제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강요하는 수법을 찾아낸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 방식은 단순했다. 요구받은 지침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직장을 잃거나 공공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가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자유나 생계를 잃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이 방식은 효과를 거두었다. 이제 세계 지도자들은 코로나19(COVID)라는 어두웠던 시절의 수법을 다시 꺼내 들며,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 내러티브 속에 모든 사람을 가두고 조종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번 사건에서 관심의 표적이 된 것은 어김없이 이스라엘이다. 노르웨이는 "유대인 정착민"이 생산한 제품을 무심코 구매한 자국민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정착촌과의 거래를 범죄화하며, 고의적인 위반에 대해서는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제품 중 하나를 구매했다가는 자칫 최대 3년 동안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추야자: 요단 계곡(요르단 밸리)의 대규모 농장에서 재배되는 메드줄(Medjool) 및 기타 품종들로, 주요 수출 품목이다.
신선 농산물: 감귤류, 포도, 각종 채소류.
올리브 및 올리브유: 정착촌 과수원에서 재배되어 기름으로 가공된 제품.
견과류 및 허브: 역시 현지에서 재배되어 수출되는 아몬드와 땅콩류.
와인: 서안지구와 골란고원에 위치한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
플라스틱 및 금속류: 압출 알루미늄, 건축 자재, 산업용 원자재.
화장품: 해당 지역의 광물과 천연 추출물을 활용한 제품.
가공식품: 정착촌 내부 산업단지에서 가공·포장된 식품, 드레싱 및 조미료.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대와 사마리아(서안지구)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처벌하려는 국가는 비단 노르웨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은 영국의 조치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유사한 조치를 취하거나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공포를 통한 반이스라엘 강요
이것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각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소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투옥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그들을 강제로 반(反)이스라엘 전선에 서게 만드는 교묘한 수법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디스토피아 사회가 따로 없다. 정부가 시민이 어떤 물건을 살지까지 일일이 통제하고 규정하는 것보다 더 억압적인 체제가 어디 있겠는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정치적 가치로 여기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적·경제적 자유의 극대화를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리버태리어니즘)를 지지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징벌적 입법을 밀어붙이는 이들에 따르면, 이번 조치에서 반유대주의 냄새가 난다고 비판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향한 극히 미세한 비판에 대해서도 걸핏하면 개인과 국가를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반박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인권 침해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유대인 국가를 전쟁 범죄, 인권 침해, 국제법 위반으로 몰아세우는 데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다른 나라들의 행태를 면밀히 뜯어보면 이 논리는 금세 허물어진다.
이 국가들은 이스라엘만을 콕 집어 표적 삼음으로써, 실상은 법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들의 중상모략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에스펜 바르트 에이드(Espen Barth Eide)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반과 권리 침해에 대해 비판하는 서방 국가들을 향해 '반유대주의자'라고 몰아붙이며 위협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여러 방면에서 누려왔던 그 [보호막]은 사라졌다."
반유대주의자나 편협한 증오자라는 딱지를 교묘히 피해 가면서도 이스라엘을 징벌할 수 있는 악마적인 묘수를 찾아냈다는 생각에, 그가 손을 비비며 짓는 회심의 미소가 눈에 선할 정도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연출이다. 평범한 노르웨이 시민들이 단지 좋아하는 와인 한 병을 샀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는 동안, 에이드 장관은 진정한 정의의 투사처럼 행세하고 있다. 자신들의 추악한 민낯을 가리기 위한 희대의 무화과잎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놀라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저들이 정치를 해나가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먼저 어젠다를 설정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치밀하게 계산한다. 그것이 성사되고 나면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어떤 강제적 수단이 필요한지를 결정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개인의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옥죄기만 하면, 대중은 정부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것에 굴복하게 마련이다.
투옥이라는 처벌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감옥에 갇힌 수감자는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생업에 종사할 수도 없다. 한 개인을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산시키고 평판을 무너뜨리며, 정부의 입맛에 맞게 굴복할 때까지 쇠사슬에 묶어둘 수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대중을 움직이게 만드는 세계 지도자들의 수완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선거에 출마할 때는 저마다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민주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권력을 쥐고 당선되는 순간 이 군주들은 펜대 하나로 국민들을 노예화할 수 있다.
종이 위의 잉크 한 방울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군대와 병사를 동원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는 권력을 쥔 정부가 자신들이 밀어붙이고자 하는 어떤 법안이든 유권자들이 따르도록 유도하는 미래의 지배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수법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징벌적 조치들이 입법자들에게는 훌륭한 방패가 되어주는 동시에, 다른 모든 민족과 달리 하나님의 언약적 섭리(divine decree)에 따라 조상의 고토로 돌아온 유일한 민족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기를 쓰고 처벌을 가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러한 특별한 특권이야말로, 세상 열방의 눈에는 도저히 곱게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본 기사는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에 최초 게재되었으며 허가를 받아 전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