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동화된 디아스포라 유대인 적극 구해야… 충분한 역량과 책임 있어”
전 세계 유대인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한탄하며,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의 츠비카 클라인(Zvika Klein) 편집국장은 최근 금요일 칼럼에서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왜 이 위기의 본질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여러 유대인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미국 내 유대인의 이민족 간 통혼(혼혈 결혼) 비율이 무려 70%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통계였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유대인 공동체는 말 그대로 소멸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소식 앞에 우려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희망은 있다. 다만 누구도 편하게 꺼내놓지 못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네페시 브네페시(Nefesh B'Nefesh)와 같은 알리야(이스라엘 귀환) 전담 기관들은 귀환 운동에 헌신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이 보기에 유대인의 조국에 살 자격이 덜하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걸러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 통혼자, 정통파 유대교를 따르지 않는 이들, 혹은 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전향했을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이에 해당한다. 혈통상 온전히 100% 유대인이 아닌 이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선별 및 배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이스라엘로 데려와 절기와 관습, 전통을 다시 접하게 하고 자녀들이 유대인과 결혼할 기회를 열어주지 않는다면, 이 거대한 인구 집단은 미래의 유대인으로서 영영 상실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반대로 이러한 가정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킨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거의 보장된다. 일단 이곳에 오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촛불을 켜고 의미 있는 유대를 맺는 전통적인 금요일 저녁 샤밧(안식일) 만찬을 마주하게 된다.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기 때문에 토요일에는 진정한 쉼을 누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 더 이상 세차를 하거나 쇼핑몰로 달려가고, 미뤄둔 잔업을 처리하는 흔한 휴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성경적·문화적·국가적 명절과 기념일들을 겪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민족과 더 일치되고 결속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게 된다.
물론 그들의 자녀들은 학교에 다니며 히브리어를 배우고, 늦은 나이에 이주한 이들과 달리 현지인과 다름없는 발음으로 언어를 구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친구는 자연스럽게 유대인이 될 것이며, 천천히 이 나라의 미래로 뿌리내리며 자신들의 역사를 교육받게 된다.
그 아이들은 군에 입대해 복무하고, 대학에서 공부하며, 이곳에 사는 방대한 유대인 청년층 중에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사회를 진정으로 구원하고자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반대로 개개인의 핏줄에 흐르는 유대인 혈통의 순도와 비율에만 집착하거나,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는 정통파 신앙인이 아니면 문을 걸어 잠그는 이들에게 있어 전 세계 유대인을 구하는 일은 이미 포기해 버린 대의명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더 이상 그러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구할 가치가 있는 유대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 전, 필자는 어떤 신앙을 가졌든 모든 유대인을 고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한 인사와 바로 이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유일한 기준은 1950년에 제정된 세속적 귀환법(Law of Return)에 명시된 바, 즉 유대인의 자녀이거나 손주인 것으로 충분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소속 유대인이나 통혼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반응은 '그들은 이스라엘에 올 자격이 없으므로 디아스포라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시각에서 그들은 유대교를 저버리는 선택을 한 자들이며, 설령 제2의 홀로코스트가 일어난다 해도 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상 자신의 종교적 성향이나 결혼 상태와 관계없이 민족적으로 유대인으로 남아 있는—그 누구도 지우거나 부인할 수 없는—수십만 명의 동족을 향해 문을 닫아걸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더라도 반유대주의 공격, 인격 모독적 언사, 사회 여러 부문에서 유대인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시도들은 잦아들 기미 없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물론 시나고그에 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 비유대인과 결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姓)이 로젠버그(Rosenberg)나 레바인(Levine)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회에 동화되어 더 이상 민족의 전통과 밀접하지 않다는 이유로 특별한 예외나 관용을 베풀어줄 것 같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진실은 세속화되고 동화된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의 눈에는 여전히 이방인이자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존재로 비친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유대인의 유전자는 결코 지워낼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내린 삶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들의 생명은 여전히 위협 속에 놓여 있다.
그들을 구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양심과 연민이 결여되어 있거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유대교의 근본 가르침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대인 사회는 참으로 다방면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들의 신체적 안전, 민족적 연속성,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무엇보다 조국 이스라엘의 생존이라는 문제가 모두 걸려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추가적인 사회적 짐으로 여길지 모르나, 그들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강건해질 때, 떠나간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인구학적 규모 면에서도 우리 모두가 그 혜택을 함께 누리게 된다.
물론 그들은 언어와 관습, 우리 사회의 고유성을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적응을 마치고 나면, 왜 진작 이들을 포용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국가의 거대한 자산이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클라인 국장의 지적은 정확하다. 수많은 이스라엘 정치인은 이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상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잃어버린' 동족을 품음으로써 이 나라에 흘러들어올 거대한 잠재력과 축복을 내다보는 비전이 결여되어 있다.
스스로 알리야의 여정을 걸어온 우리 모두는 동족의 품으로 모여들어 시오니즘의 꿈에 동참하고, 공동의 역량을 결집해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사회를 건설하는 축복을 누렸다는 사실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못할 이유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이유도 없다. 이는 이미 우리 귀환법 안에 명시되어 있는 가치다. 세계 유대인 사회의 진정한 비극은 단지 그것이 현장에서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