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집안(A House Divided): 이스라엘을 향한 경종과 유대인 분열의 혹독한 대가
이스라엘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부르심을 맡았을 때, 이츠하크 헤르초그(Isaac Herzog)는 통곡의 벽(서쪽 벽, 코텔)으로 향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첫 행보는 의회의 전당이 아니었다. 온갖 화려한 의전과 격식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외국의 지도자를 예방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첫 여정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an audience of One)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 통곡의 벽을 찾는 것이었다. 한때 솔로몬 성전의 웅장함과 위엄을 떠받쳤던 그 고대 석벽 앞에 선 그는, 두 거대한 바위 틈 사이에 손으로 쓴 기도 쪽지 하나를 넣었다. 거기에는 그의 간절한 마음의 소원이자, 그에 앞섰던 9명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성공적인 임기 중 하나로 기억될 시간을 관통하게 될 핵심 주제가 담겨 있었다. 그 쪽지는 자신의 직무 수행이 "우리 백성 사이의 일치와 이스라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가져오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기도문이었다. 과거 유대 민족의 분열이 치러야 했던 가혹한 대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유대 민족의 연합을 향한 그의 끊임없는 외침은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가장 중심적이고 감동적인 주제가 되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국경 밖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내부에서 비롯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이 치열하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과 대화로 잘 알려져 있다지만, 오늘날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수많은 도전 과제가 이스라엘의 연합을 위협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목표를 둘러싼 논쟁이든, '점령지'로 불리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정착촌 확장을 둘러싼 좌우 진영의 깊은 갈등이든, 사법부의 미래를 둘러싼 헌정 위기든, 공공 영역에서 성별 격리 등 유대 율법(할라카)의 역할을 둘러싼 긴장이든, 초정통파(하레디) 남성들에게 역사적으로 부여되었던 병역 면제 특혜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더십이 수명을 다했는지를 두고 갈수록 파편화되는 정치 지형이든, 혹은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수십 가지의 또 다른 이견들이든, 이스라엘인들은 분열된 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사회적·종교적 분열에 대한 깊은 우려는 최근 헤르초그 대통령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경고하게 만들었다. "나는 우리 내부에서 비롯되는 위협, 즉 우리 스스로의 양극화와 상호 소외보다 우리 민족에게 더 큰 실존적 위협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유대인들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오래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날카롭게 인식해 왔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수 세기 동안 그들의 존속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장 반복해서 주신 명령은 바로 '기억하라'는 명령이다. 거룩한 경전 속에 수십 번이나 언급되는 명령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첫 기착지는 길갈이었으며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기 위해 종종 그곳을 다시 찾았다.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면...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편 137:5-6)라고 절규했다. 수 세기에 걸친 유랑 생활 속에서, 그리고 수천 번의 유월절 만찬 식탁에서 그들은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축복의 기도로 예루살렘을 기억했다. 유대인 친구들은 집 문설주에 메주자(Mezuzah)를 달아놓아 드나들 때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억'한다. 유대인들에게는 망각이라는 사치가 허락되지 않는다. 기억상실증은 그들에게 결코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종은 크고 길게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하다.
유대 민족만큼 모국으로부터 거듭된 추방과 유랑의 고통을 겪고 견뎌낸 나라는 없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세 차례나 절멸의 위기에 처하며 거대한 유배의 아픔을 겪었다. 첫 번째는 요셉 시대로, 결국 애굽의 노예 생활과 400년에 걸친 유배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아브월 9일에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며 바벨론 포로기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유대력으로 이 엄숙한 날이 돌아오면, 유대인들은 바닥에 앉아 애가서를 묵상하며 애통해한다. 세 번째 유배는 티투스와 그의 로마 군단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멀리 떠나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거의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세 번의 유배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유대 민족이 '스스로 분쟁하는 집'이 되었을 때 일어났으며, 결국 내부 분열이 치러야 할 가혹한 대가의 운명을 드러냈다. 고(故) 조나단 색스(Jonathan Sacks) 랍비는 이러한 유배가 유대인 내부의 분열에서 비롯된 것임을 가장 먼저 명쾌하게 통찰한 인물이었다. 그는 도덕적 명료함을 담아 이렇게 지적했다. "역사는 복잡하다. 그러나 기억은 명확하다. 유대인의 기억 속에서 세 번의 유배는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요셉 시대와 야곱 및 그의 아들들이 약속의 땅을 떠나 유배된 과정을 생각해 보라. 질투와 증오에 눈이 먼 요셉의 친형제들은 그를 구덩이에 던졌고, 애굽으로 내려가 경매에 부친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그를 팔아넘겼다. 놀라운 기적들의 연속을 통해 그는 당대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된 제국의 사실상 총리가 되었다. 이후 가나안 땅에 극심한 기근이 닥치자 야곱과 그의 가족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요셉과 재회한 그들은 비옥한 고센 땅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번영을 누렸고 세월이 흐르며 그 수가 크게 번성했다. 그러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가 일어났다. 이 히브리인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 그는 가혹한 노역으로 그들을 노예화했고, 이는 약속의 땅으로부터 400년간의 유배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은 유대인 형제들 사이의 갈라진 집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대 민족의 분열이 치르는 가혹한 대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번째 유배는 기원전 586년에 일어났다. 그 시작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이끌 왕을 요구했던 훨씬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 왕국은 3대를 지속하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갈라졌다.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에게는 열두 지파를 하나로 묶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노련한 장로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들은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열왕기상 12:7)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젊은 참모들은 강경하게 대처하며 북쪽의 열 지파를 억누르라고 부추겼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 조언을 따랐고, 결국 이스라엘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쪼개졌다. 북이스라엘은 단 한 명의 선한 왕도 배출하지 못한 채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다.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느부갓네살과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바벨론 포로로 끌고 갈 때까지 버텼다. 이 역시 유대인들이 서로 화평하게 살지 못해 스스로 갈라진 집이 됨으로써 초래된 결과였다.
뒤이어 서기 70년부터 1948년까지 이어진 유대 민족 역사상 가장 길고 뼈아픈 세 번째 유랑이 시작되었다. 1세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끊임없는 내홍에 휩싸여 있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사이에 깊은 반목이 일어났고, 본질적으로 최초의 종교적 테러리스트라 할 수 있는 시카리(자객) 열심당의 준동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여기에 랍비 유대교를 두 개의 토라로 쪼갤 위협을 낳았던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 간의 깊은 분열까지 더해져, 로마군은 도시를 포위한 채 그들이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릴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스스로 갈라진 유대인의 집은 예루살렘으로부터 2,000년에 걸친 유랑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모든 역사의 쓰라린 역설은, 유대인들을 유배지로 보냈던 그 강력한 제국들이 오늘날에는 오직 폐허와 박물관 속 유물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에 가면 한때 위대했던 제국의 잔해들과 함께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게 된다. 오늘날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면 과거 바벨론 성의 웅장한 입구를 지켰던 푸른빛과 금빛의 이슈타르 문 앞에 설 수 있다. 지중해 연안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막강했던 로마 제국이 세웠던 원형 경기장과 폐허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들은 한때 누렸던 장엄함의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수 세기에 걸친 유배를 끝내고 자신들의 모국으로 돌아왔다. 일찍이 누군가 말했듯, "유대 민족을 멸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유대 민족 자신뿐인 것 같다." 그들은 이 단순한 교훈을 결코 배우지 못하는 듯하며, 서로 사랑과 일치 속에 살아가는 것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여기는 듯하다.
2001년 9월 12일 미국인들이 느꼈던, 그리고 2023년 10월 8일 이스라엘인들이 느꼈던 상호 사랑과 연대의 순간들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현대 국가가 건국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파편화되어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 내에서 아슈케나지(유럽계) 유대인들은 세파르디(중동·스페인계) 유대인 형제들에 대해 우월 의식을 품고 있다는 평판을 얻어왔으며, 이는 종종 갈등과 대립으로 번진다. 초정통파와 세속주의 유대인들은 가장 기본적인 사안에 대해서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는 정당들의 분열상만을 더하고 있다. 날마다 결코 지키지 못할 장밋빛 공약들을 남발하는 새로운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이스라엘 정치가 이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복잡한 연합 구도가 등장하여 국가적 일치의 실마리마저 다시 한번 산산조각 내겠다고 위협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사회도 다르지 않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지 불과 25년, 10·7의 참극이 벌어진 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치러진 최근 뉴욕 시장 선거 출구조사에서, 뉴욕시 유대인 유권자의 3분의 1이 급진 이슬람 성향의 새 시장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대인 3명 중 1명이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전쟁 범죄자이자 끔찍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설계자라고 부른 무슬림 정치인에게 투표한 것이다. 뉴욕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은 유대인 단체들의 연례 행사인 '이스라엘의 날' 퍼레이드에 불참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충실히 지키며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불참을 선언한 시장을 지지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오늘날 유대인 사회의 분열은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이는 전 세계 유대인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 즉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경종이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직시해야 한다. 고대 선지자들과 지도자들의 음성을 다시 듣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동포들을 향해 연합과 상호 책임의 중요성을 호소했던 다윗 왕의 경고와 같은 말씀 말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수 세기를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호소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강력한 경종을 울린다. 오늘날 그의 후손들을 향해 애원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세기 13:8). 모세를 통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 하신 하나님(HaShem) 자신의 간절한 호소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토라는 또한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하게" 할 수 있다(신명기 32:30)며 일치가 지닌 폭발적인 힘을 상기시킨다. 복음주의자들이 '예슈아 하마시아흐(Yeshua HaMashiach)'라 부르는 나사렛 예수 역시 1세기 유대인들의 내홍 한가운데서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마가복음 3:25)라는 예언적 경고를 남겼다.
2023년 미국 의회 연설에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한 국가로서 우리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스스로 갈라진 이 집에게 남겨진 시간이 또다시 바닥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스라엘이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선거 국면에 접어든 지금, 헤르초그 대통령은 최근 자국민을 향해 단호하고 명확한 최후의 경종을 울렸다. 그는 동포들에게 고대 성전의 파괴가 오늘날 우리에게 "우리 내부의 양극화, 분열, 그리고 증오"의 위험성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가오는 선거가 이스라엘의 결속과 일치를 시험하는 시험대임을 인정하며 그는 경고했다. "우리는 이미 두 번 실패했습니다.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곧 우리 이스라엘 친구들에게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복음주의자들과 유대인 모두가 하늘 문을 두드리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시편 122:6)고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눈동자"라 칭하셨던 이 백성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과 일치의 영이 회복될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그것은 기적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전히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이스라엘 친구들이 하늘에서 울리는 이 경종을 듣고, 은혜의 보좌를 향해 간절히 부르짖음으로써, '스스로 갈라진 집'이 맞이하곤 했던 그 비극적인 운명을 부디 피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올 이스라엘 뉴스’의 신뢰할 수 있는 보도가 여러분께 중요하신가요? 함께해 주세요. 월 5달러의 후원 파트너 가 되어 저희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