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기독교에 대한 좀로트 대사의 주장에 성경적으로 답하다: 역사와 성경, 그리고 복음
영국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후삼 좀로트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기독교, 성경,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여러 가지 중요한 주장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단순히 정치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성경과 역사, 역사적 기독교의 관점에서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성지와 중동 전역에 오래되고 중요한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나사렛을 비롯한 이 지역 여러 곳에는 수 세기 동안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해 왔다. 그들의 역사와 존재, 기여를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최초의 기독교인이다”라는 주장에는 흔히 제시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현대 팔레스타인의 민족 정체성에서 출현한 것도 아니고, 현대의 어떤 정치 운동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1세기 유대와 갈릴리의 유대교적 배경 속에서 시작됐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사셨고, 갈릴리와 유대 전역에서 사역하셨으며, 신약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Palestinian Ambassador to UK Husam Zomlot: Palestinian History Was Stolen; We Are the Original Christians; The Bible Was Rewritten to Be Used Against Us; Jesus Is Our Gift to the World https://t.co/gOkzF1hAzd
— MEMRI (@MEMRIReports) September 16, 2026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로마서 1:3)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마태는 예수님을 구약성경을 성취하신 약속된 메시아로 제시한다(마태복음 1:1, 2:5~6).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에 뿌리를 둔 분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현대의 정치적 서사에 맞추기 위해 단순히 재정의할 수는 없다.
둘째, “성경이 우리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도록 다시 쓰였다”는 주장은 매우 중대한 비난이며, 따라서 그에 걸맞은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한 주장이 감정적으로 강한 호소력을 지니거나 정치적으로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중대한 역사적 주장은 확실한 역사적 증거로 뒷받침돼야 한다.
역사적으로 개인과 정부, 정치 운동이 성경을 오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을 오용하는 것과 성경 본문 자체를 다시 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성경을 왜곡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목적을 뒷받침하도록 성경이 변경됐다는 뜻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토대를 겨냥한다는 점이다. 성경이 정치적 의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시 쓰였다면, 성경의 권위와 신뢰성은 근본적으로 훼손된다. 그러한 발언은 단순히 정치적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성경을 신뢰하고 전파하며 번역하고 보존하고 옹호해 온 아랍계 및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을 포함해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도전하는 것이다.
역사적 증거는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성경 본문은 이미 고대 세계 전역에서 필사되고 번역되며 연구되고 전파됐다. 성경은 현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현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시 쓰인 것도 아니다.
성경이 다시 쓰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거의 2천 년 동안 전 세계 교회가 받아들여 온 본문에 대해 포괄적인 역사적 비난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는 증거가 필요하며, 증거가 없다면 거부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현대의 정치적 서사에 기초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삶과 죽음, 부활에 기초한다.
셋째, 예수님을 현대 민족주의의 범주를 통해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존재하는 국가적 정체성은 1세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사셨으며, 유대인의 성경을 성취하셨고, 로마의 통치 아래 역사적으로 유대와 갈릴리로 알려졌던 땅에서 사역하셨다. 예수님에게 현대의 국가적 범주를 적용하는 것은 역사적 정확성이 아니라 역사 수정주의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그리고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16
예수님은 현대의 어떤 국가나 민족, 정치 운동의 소유도 아니다. 그분은 서로 경쟁하는 집단들이 자기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치적 상징이 아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약속된 메시아이며 세상의 구원자이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아랍계 및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역사와 존엄성,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현대의 정치적 의제에 맞추기 위해 성경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거부할 수 있다. 성경의 유대교적 역사 배경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권리를 옹호할 수 있다.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의와 평화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좌파에서 나오든 우파에서 나오든, 현대적 목적을 위해 성경의 역사를 다시 쓰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정치를 판단해야 한다. 우리의 정치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써서는 결코 안 된다.
복음에는 정치적 수정이 필요하지 않다. 성경을 다시 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현대의 어떤 정치적 정체성에도 속하지 않으신다.
성경이 현대의 특정 대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시 쓰였다는 주장은 역사적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성경은 오늘날의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으며, 그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다. 정치적 의견 차이에 대한 해답은 역사를 다시 쓰거나 예수님의 정체성을 재해석하거나 성경의 온전함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35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책임은 성경이 우리의 정치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의 정치와 역사, 삶에 진리를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적 서사가 성경적 진리와 충돌할 때, 기독교인들은 그 입장이 인기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편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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