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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참사 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 미 의회 차원의 조사 촉구

 
2025년 9월 2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미국 영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인질 석방과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아브샬롬 사소니/Flash90)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학살로 숨진 이스라엘계 미국인 군인의 아버지가 미국 의회에 당시 공격을 조사할 조사위원회 설립을 촉구했다. 그는 가족들이 공격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답을 거의 3년 동안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계 미국인 군인 이타이 첸의 아버지 루비 첸은 수요일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무부 본부에서 열린 추모식 이후 이러한 요청을 했다. 추모식은 하마스 학살 당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미국 시민 46명을 기리기 위해 국무부가 개최했다.

첸은 공격의 계획과 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이 튀르키예와 카타르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나라는 미국과 긴밀한 군사·외교·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양국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책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첸은 행사 이후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국가조사위원회를 설립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미국이 공격에 대한 조사를 주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조사위원회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제 미국, 미국 의회가 미국인 피해자들을 위한 조사위원회를 설립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제 1,000일 동안 가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기다려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과거 많은 미국 시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들에 대해 공식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첸의 책임 규명 요구는 수요일 오전 국무부의 벤저민 프랭클린 룸에서 열린 고위 당국자들과의 감정적인 만남에서 다른 유가족들에게도 공감을 얻었다. 이 자리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그의 아내 앨리슨 등이 참석했다.

첸은 예루살렘 포스트에 미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제독도 회의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쿠퍼 제독은 2025년 11월 이타이의 장례식에서 첸이 건네준 아들의 군번줄을 지금도 착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첸은 러트닉 장관이 살해된 인질들의 가족들이 공식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러트닉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자신의 형제 게리와 당시 자신이 이끌던 금융서비스 회사의 직원 658명을 잃었다.

첸은 “오늘 우리는 작은 위안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10월 7일 키부츠 니르오즈에서 친척인 카르멜라 단과 그의 손녀 노야 단이 살해된 미국계 이스라엘인 애비 온도 미국 당국자들이 전한 메시지를 환영했다.

그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고, 매우 형식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러트닉 장관과 그의 아내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모든 사람, 모든 이름, 모든 개인, 모든 영혼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온은 유가족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이 테러를 겪었다는 공통된 경험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난 25년 동안 발생한 최악의 테러 공격 두 건을 겪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싸움은 테러에 맞서는 것이며, 우리의 싸움은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온은 또한 10월 7일 3주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대응을 비판하면서, 공식적인 국가 추모행사가 없다는 점이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세요. 우리는 방금 10월 7일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추모는 없었습니다. 시민 차원의 추모는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은 아니었습니다. 추모 사이렌도 없었습니다. 사이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 갔고 직장에 갔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날에 걸맞은 적절한 수준의 존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온 역시 공식 조사와 미국 수도의 추모시설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동참했다.

그는 “그들은 국가 차원의 조사를 원합니다. 워싱턴 D.C.에 추모시설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10월 7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