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 사람들 – 어원으로 살펴보기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 전도서 1장 9절
3,000년 전인 기원전 10세기, 유다의 다윗은 가자 출신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맞섰다. 기세등등하게 큰소리치던 블레셋 군대는 유다의 전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윗이 돌 하나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전사를 쓰러뜨리자, 블레셋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났다.
오늘날 바로 그 땅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의 이름과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결연한 적과 맞서고 있다. 스스로를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히브리어 플레셰트(Pleshet) 또는 *플리슈팀(Plishtim)*에서 유래한 비아랍어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침입자, 불법 점거자를 뜻한다. 고대 토라 두루마리에서 플리슈팀의 영토, 즉 팔레스타인으로 음역되는 지역이 언급되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그마저도 가자 인근의 지중해 연안에 한정되며, 서안지구라고도 불리는 유대·사마리아 지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어느 팔레스타인인에게든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고개만 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인들을 침입자이자 불법 점거자라고 부른다.
서기 70년 로마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 주민들을 추방한 뒤, 그때까지 유대(Judea)로 알려졌던 땅에 *팔라에스티나(Palaestina)*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대인(Jew)이라는 명칭도 유대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다. 로마인들은 유대 민족의 역사적 숙적인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지역의 명칭을 바꿈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더 큰 굴욕을 안겼다. 콜럼버스가 자신이 인도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원주민들을 잘못해서 ‘인디언(Indians)’이라고 부른 것처럼, 그렇게 붙여진 이름은 수세기 동안 그대로 남았다.
서안지구, 역사적으로 유대·사마리아로 알려진 지역에 마흐무드라는 팔레스타인인 지인이 있었다. 나는 그의 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보고 대학 졸업반 단체사진처럼 보인다며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그 사진이 “1967년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이 파괴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떠나라고 해서 요르단으로 간 자신의 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이스라엘을 파괴하지 못했고 아직도 요르단에 있지만, 마흐무드는 남아서 여전히 자기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마흐무드에게는 자녀가 17명 있었다.
나는 또한 내가 살던 길로(Gilo) 옆 아랍 마을의 무크타르(Mukhtar, 마을 대표)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도 있다. 그 역시 떠나지 않고 남았으며, 지금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약 200만 명의 아랍인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이스라엘 시민의 20%를 차지한다. 이들은 완전한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일상은 뉴스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랍계 시민들 가운데는 자발적으로 이스라엘군(IDF)에 복무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대법관과 크네세트 의원, 의사, 경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이곳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가 없다.
블레셋의 하마스를 나타내는 표식과 상징은 분노를 드러내는 교차된 두 자루의 검이다.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만한 다른 가치는 거의 제시하지 못한다. 반면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해온 이스라엘의 표식과 상징은 메노라(Menorah), 곧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등잔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