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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책의 백성’은 그 책을 믿어야 한다

 
히브리 성경. (사진: Shutterstock)

작가 세바스티앙 레비는 최근 기고문 「이스라엘 고립의 자기실현적 예언자(The self-fulfilling prophet of Israeli isolation)」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최근 유엔총회 연설이 이스라엘이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했다고 개탄했다. 이는 이츠하크 라빈이 1992년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반드시 홀로 거하는 민족이 아니며, 전 세계가 우리를 반대한다는 것도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거의 반세기 동안 우리를 사로잡아온 고립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34년은 세계가 유대 국가를 바라보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레비가 아무리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의 발언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실제로 미움받고 경멸당하며 완전한 고립을 향해 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비는 우리나라를 좀 더 긍정적으로 제시하면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순진하고 정보가 부족한 관점은 성경이 “마지막 때”로 알려진 종말론적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세계 여러 나라가 유대인의 고국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묘사하는 방식과 완전히 배치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스가랴 14장으로, 여기에는 “모든 민족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것이 그 책에 기록된 내용이며, 미래를 엿볼 수 있었던 한 유대인 예언자가 쓴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진실한 것으로 믿어야 한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이것이 사실임을 우리가 아는 이유는, 20년 전만 해도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 박해라는 생각은 어느 누구의 머릿속에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도 없었고, ‘시오니스트’라는 단어가 경멸적인 욕설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남성과 여성은 다윗의 별을 착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민족적 배경을 가진 병원 환자들이 입원 서류에 자신의 종교를 기재할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어느 휴가지가 자신들에게 안전하고 어느 곳이 그렇지 않은지 멈춰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도시 광장에서 열리는 공개 하누카 행사는 아무 사고 없이 진행됐다. 회당과 유대인 학교 입구에 무장 경비원을 배치할 필요도 없었다. 유로비전 참가국들이 이스라엘의 참가를 이유로 대회에서 철수하는 일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불과 3년 만에 지진과도 같은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나 유대인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타자’의 범주로 밀려나 더 가치 없고, 덜 충성스럽고, 덜 환영받는 존재처럼 느끼게 됐다.

여러 국가는 유대·사마리아에서 생산된 제품의 판매나 구매를 금지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유대 민족의 소유였고, 적어도 성경의 관점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영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처럼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왜 누군가는 스가랴 14장이 진실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오래된 동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달리 유대인들은 성경을 항상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역사적·고고학적으로 정확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요나라는 사람이 고래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지냈다고 반드시 믿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언도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사건으로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교훈이 담긴 비유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모든 불길한 징후를 본다면, 예언된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이 확신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그들 가운데 절반은 조상의 고국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연결도 없는데,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쏟아지고 있는 증오와 혐오의 폭발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공격을 받은 다른 어떤 나라의 대응과도 다르지 않은데, 왜 자국민을 정당하게 방어하는 행위가 집단학살로 규정되는가? 그리고 왜 이스라엘인들은 억압자이자 점령자로 묘사되는가?

이는 어디에 살든,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든 상관없이 민족 전체를 악마화하려는 조직적인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선두에 선 이들은 서구 사회에 더욱 효과적으로 침투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위협해 그들 가운데 사는 유대인들이 문제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 출신 국가를 떠난 이슬람 침입자들이다.

소셜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또래 집단이 주입하는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무지한 ‘워크(Woke)’ 세력까지 이에 가세하면서, 이들은 함께 유대 국가와 그 혈통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을 겨냥한 증오 캠페인을 확산시켰다.

스가랴 14장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어느 시점에나 해당되는 비현실적인 예언이 아니다. 그 구절에서 언급된 전쟁이 아직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됐다.

에스겔 38장과 39장 같은 다른 예언들은 북쪽에서 다국적 연합군이 내려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그들을 하나의 국가로서 없애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스가랴 12장은 “예루살렘이 모든 민족을 비틀거리게 하는 잔이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대적할 것이다. 땅의 모든 민족이 그것을 치려고 모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만한 이스라엘인들이 세상의 나머지 국가 없이 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 스스로 초래한 고립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이스라엘과 그 백성을 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은 뒤집을 수 없으며,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은 결국 스스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는 메시지를 열방에 보내기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갑자기 배척당하고 정당성을 부정당하는 이유를 놓고 마치 우리 자신이 이 엄청난 혐오를 초래한 원인인 것처럼 책임 소재를 찾으려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은 수천 년 전 예언된 것이 이제 자신들의 곤경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현재의 현실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읽히며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를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책의 민족’이라는 명칭을 몸소 구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