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았던 점령
수십 년 동안 국제사회의 담론을 지배해 온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관한 서사가 있다. 이 서사에서 이스라엘은 침략자이자 점령국이며 평화의 장애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단순히 불완전한 것이 아니다. 핵심 주장들이 명백히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다. 다음은 법적·역사적·도덕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논거다. 이는 마땅히 그래야 하듯, 어떤 사과도 없이 제시한다.
I. 이 땅은 국제법에 의해 유대 민족에게 주어졌다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 민족의 현대적 법적 권리는 1948년에 시작되지 않았다. 그 시작은 1917년 밸푸어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920년 산레모 회의와 1922년 국제연맹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문서를 통해 구속력 있는 국제법으로 명문화됐다.
이 위임통치 문서는 단순히 막연한 동정심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팔레스타인과 유대 민족의 역사적 연관성”을 인정하고, 위임통치국인 영국에 “공공목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국유지와 미개간지를 포함해 유대인들이 그 땅에 밀집해 정착하도록 장려할 것”을 요구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였다.
이 위임통치 문서는 ‘팔레스타인인’의 민족적 고향을 만들지 않았다.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만들었다. 기존 아랍 주민들의 권리는 보호됐지만, 민족적 고향은 유대인의 것이었다. 이는 해석이 아니다. 문서에 명시된 내용이다.
II. 아랍인들은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전쟁을 선택했다
역사적 기록은 명확하다. 1937년 필 위원회는 아랍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영토의 약 80%를 제안했다. 그들은 거부했다. 1947년 유엔은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 두 국가로 분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대인들은 수용했다. 아랍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섬멸 전쟁을 시작했다.
그 거부는 협상을 위한 입장이 아니었다. 의도를 선언한 것이었다. 아랍 최고위원회는 유대 국가를 받아들이느니 “성지의 땅을 우리 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적시겠다”고 위협했다. 아랍 7개국 군대가 침공했다. 트뤼그베 리 유엔 사무총장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세계가 목격한 최초의 무력 침략”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양상은 이후 70년 동안 반복됐다. 2000년 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가자지구 거의 전역과 서안지구 대부분을 포함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제안했다. 아라파트는 이를 거부하고 제2차 인티파다를 시작했다. 2008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는 더욱 관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마흐무드 압바스는 협상에서 물러났다.
이스라엘은 제안했다. 아랍인들은 거부했다. 이것이 기록이다.
III. 1967년 선은 국경이 아니다
이 논쟁의 핵심적인 거짓 주장 중 하나는 ‘1967년 국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1949년의 선은 휴전선, 즉 전투가 멈춘 지점을 나타내는 선이다. 휴전협정 자체에도 이 선들이 정치적 또는 영토적 경계가 아니라고 명시돼 있다. 이 선들은 “오로지 군사적 고려에 따라” 정해진 임시적인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했을 때, 이는 방어전쟁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집트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철수시켰고, 티란 해협을 봉쇄했으며, 이스라엘 국경에 군대를 집결시켰다. 시리아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포격했다. 요르단은 이집트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공격에 가담했다.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했지만, 그것은 자위권 행사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어전쟁이 주권을 이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를 병합하지 않았다. 그곳에 자국 법률을 적용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은 최종 지위를 협상에 맡겨 두었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42호가 휴전선이 아닌 “안전하고 승인된 경계”를 요구하면서 구상했던 바로 그 방식이다.
IV. 법적 의미에서 점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점령국’이라는 주장은 법적 검토를 거치면 무너진다.
점령법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주권 영토를 장악했을 때 적용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1967년 서안지구를 장악했을 당시 그곳에는 합법적인 주권자가 없었다. 요르단이 1950년 서안지구를 병합한 것은 영국과 파키스탄, 단 두 나라만 인정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군사점령지로 취급했으며, 그곳에 대한 주권을 주장한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반환받을 주권자의 부재(missing reversioner)’ 문제다. 영토를 돌려받을 주권자가 없었다. 따라서 그 영토는 점령지가 아니라 분쟁지역이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 학장을 지낸 유진 로스토와 도어 골드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법률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주장을 펼쳐 왔다. 그 영토는 분쟁지역이다. 최종 지위는 일방적인 선언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V. 가자지구가 그 의도를 입증했다
2005년 이스라엘은 역사상 어떤 나라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자국이 통제하던 영토에서 자발적으로 철수하면서 모든 정착촌을 철거하고, 가자지구에서 모든 군인과 시민을 철수시켰다. 번영하는 경제의 토대가 될 수 있었던 온실과 기반시설도 남겨 두었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마스는 2007년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온실을 파괴했으며, 가자지구를 수천 발의 로켓을 발사하는 기지로 바꾸었다. 2023년 하마스는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다. 1,200명이 사망하고 250명이 인질로 붙잡혔으며, 공동체 전체가 파괴됐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피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가자지구는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았다. 전쟁의 기지가 됐다.
VI. 분쟁의 배후에 있는 교리
이 분쟁의 근본 원인은 영토가 아니다. 신학이다.
고전 이슬람 법학은 세계를 다르 알이슬람(Dar al-Islam)과 다르 알하르브(Dar al-Harb)로 구분한다. 서기 637년에 정복된 이스라엘 땅을 포함해 과거 무슬림이 정복했던 영토는 영원히 이슬람의 영토로 간주된다. 그 땅에 대한 비무슬림의 주권은 반드시 되돌려야 할 일시적인 비정상 상태로 여겨진다.
이 교리 때문에 아랍 국가들은 1949년의 선을 국경이 아닌 ‘휴전선’이라고 부를 것을 고집했다. 그들이 이슬람 영토로 간주하는 땅에서 단 1인치라도 유대인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이란이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 미국을 ‘큰 사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란은 이 분쟁을 지정학적 문제가 아니라 우주적 투쟁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이란 의회가 2021년 ‘2041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제거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이스라엘이 25년 안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하메네이의 선언을 법률로 명문화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마스의 1988년 헌장이 이스라엘의 파괴를 촉구한 이유이며, 온건한 문서로 잘못 묘사된 2017년 문서에서도 여전히 “시온주의 실체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팔레스타인을 “동쪽의 요르단강에서 서쪽의 지중해까지” 뻗어 있는 영토로 규정한 이유다.
이는 협상을 위한 입장이 아니다. 의도를 밝힌 선언이다.
VII. 세계는 이스라엘에 반대하고 있으며, 그것은 잘못됐다
유엔 총회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이스라엘을 겨냥한 결의안 173건을 채택했다. 같은 기간 다른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채택된 결의안은 모두 합쳐 80건이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는 오직 이스라엘만을 다루는 상설 의제인 ‘의제 7번(Item 7)’이 있다. 다른 어떤 국가에도 이러한 의제는 없다.
이는 감시가 아니다. 집착이다. 이는 1922년 국제연맹이 원래 위임통치 영토의 80%에 해당하는 트란스요르단을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에서 분리해 아랍의 에미르에게 넘겨주도록 했던 것과 같은 충동이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다른 어떤 국가와도 다른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 왔다. 그 기준은 법이 아니다. 편견이다.
VIII. 앞으로 나아갈 길
이스라엘은 분할안에 구속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와 제2차 인티파다를 통해 포기한 오슬로 협정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애초에 국경이 아니었던 휴전선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따라야 하는 것은 1979년 이집트와의 평화, 1994년 요르단과의 평화를 만들어낸 것과 동일한 원칙이다. 바로 직접 협상, 국경선에 관한 합의, 그리고 당사자들 스스로의 합의 이행이다.
이 조약들은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왔다. 이는 상대방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할 때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러한 합의에 열려 있다. 2000년과 2008년, 그리고 2020년 네 아랍 국가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기다리지 않고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브라함 협정에서 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장애물은 이스라엘이 아니다. 장애물은 이스라엘 땅에 유대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부다. 이는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거부주의적 교육으로 강화되고 테러를 통해 표출된다.
그러한 태도가 바뀔 때까지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미래를 건설하며, 이웃들이 파괴 대신 평화를 선택하는 날을 기다릴 것이다.
그날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굴복했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이 굳건히 버텼기 때문에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