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도심서 터져 나온 “유대인 살해” 전쟁 구호… 충격과 분노 확산
캐나다 토론토의 유대인 밀집 지역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시위 도중 "시오니스트들을 박멸하라"고 외친 최근 영상은,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외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지 않았다.
'Z(시오니스트)'라는 단어 뒤에 숨는다고 해서 본질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그 의도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열방의 빛이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가리키도록 그분이 택하신 고대 민족을 향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의도다.
유대인을 겨냥한 이 폭력의 외침은 유대 민족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로 나타나는, 급속히 확산 중인 사회적 질병을 알리는 또 하나의 경종이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하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인류는 깊은 편견과 야만성, 타락으로 뒤덮였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광장에서 사람들을 불태우고 무분별하게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용인되던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과 의학을 비롯한 삶의 전 영역에서 눈부신 발전이 꽃피워 살아가기에 가장 위대한 시대로 꼽히는 이때, 어떻게 이러한 어둠이 이 땅에 다시 들이닥칠 수 있는가? 선과 악이 나란히 공존하는 이 모순이야말로 비극적인 역설이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 중 하나로 꼽히는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가장 저열한 본능을 자극하고, 지구상에서 유대 민족을 제거하자는 새로운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부추기며 증오의 확산을 돕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어떤 존재로 변해버렸는지, 그리고 파멸로 귀결되는 광기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얼마나 쉽게 감염되었는지를 엄중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지역사회 지도자들, 성직자들, 교육자들, 대통령과 총리들은 왜 그저 수수방관하며, 갈수록 세력을 키워가는 글로벌 팬데믹의 온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시민들을 지켜보고만 있는가?
그들은 모두를 집어삼키려는 눈사태를 막기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무력감과 무능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채 무관심과 수동성에 젖어 있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미 우리 앞에 당도한 현실, 즉 모든 유대인을 학살하겠다는 노골적인 욕망을 피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러한 어두운 열망에 동조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침묵은 뒤틀린 자들의 메시지를 증폭시킬 뿐이다.
한 민족을 학살하자는 외침이 거리에서 울려 퍼질 때, 인류의 유일한 해결책이 수백만 명의 동족을 도살하는 것이라 외치는 자들을 향해 완전한 거부와 규탄의 목소리로 맞받아치는 것만이 유일하게 온전하고 건강한 대응이기 때문이다.
도덕과 온전한 정신, 이성의 목소리를 낼 만큼 경각심을 가진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필이면 유대인 거주 지역인 토론토 거리에서 울려 퍼진 7세기 전쟁 구호, "카이바르 카이바르, 야 야후드, 자이슈 무함마드 사야우드(카이바르를 기억하라, 유대인들아, 무함마드의 군대가 돌아올 것이다)"—유대인을 도륙하라는 그 외침을 압도할 단호한 목소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이아가라 폭포 대학교(University of Niagara Falls)의 데이터 분석학 석사과정 강사이자 대학 강사인 캐나다 거주자 압바스 함제(Abbas Hamze)가 "유대인들은 모든 국가에서 쫓겨났으며, 시오니스트들은 흑마술을 행하고 어린이를 강간·살해하고 잡아먹는다"고 말했을 때 놀란 사람이 있었는가? 혹은 "유대인들이 도처에 부패를 퍼뜨렸다"고 언급한 사망한 이맘의 발언을 그가 인용했을 때에는 어떠했는가?
이러한 선동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이 난무하는 와중에 침묵하는 것이 용납될 만한 대응이라고 믿는 자가 토론토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 중에 있는가?
한 엑스(𝕏) 게시물에 따르면 함제는 "유대인 학교와 시나고그(회당) 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유대인들을 위협하고 괴롭혀 왔다. 그는 '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에 인질을 잡을 권리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인 인질 납치를 정당화했고, '헤즈볼라가 10월 8일에 하마스를 도울 권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함제가 유대인 거주 지역, 학교, 시나고그에서 이러한 반유대주의 시위를 벌이는 동안 토론토 경찰이 그에게 무장 경호를 제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유대인의 죽음을 옹호하는 자가 왜 그러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한 시위에서 함제는 유대인 동네에서 이란 국기를 흔들며 "우리는 희생이 얼마나 따르든 이맘 하메네이의 길을 계속 갈 것이며, 그의 순결한 피는 필연적인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발언했다.
2022년 프랑스에서 캐나다로 입국한 이래, 캐나다가 유대인 혐오를 부추기는 비열한 인물을 자국 내에 머물도록 허용하는 이유는 미스터리다. 이 비뚤어진 인물이 캐나다 유대인 사회를 표적으로 삼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에게 동화되어 그와 손잡을 준비를 마쳤겠는가?
그들은 그의 뜻을 받들어 어떤 파괴를 자행하려 하겠는가? 이것이 소수 집단을 향한 전형적인 혐오 선동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무기력한 경찰 조직은 실제로 누군가가 살해당할 때까지 기다릴 셈인가?
캐나다는 안타깝게도 영국과 다수의 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이러한 정서가 거리낌 없이 퍼져나가도록 방치한 것이다. 그러나 한 공동체 전체를 학살하라는 요구 앞에서 그 권리는 중단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동료 인간을 향한 증오의 표현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누구인가?
지금이야말로 인류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심연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때다. 살인의 제안이 우리의 의식 속에 스며들 때, 우리의 파멸을 노리는 악한 영이 우리의 삶의 공간을 침범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되돌아갈 유일한 길은 증오와 비방의 연단을 단호히 회수하고, 절제와 자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관용과 상호 존중의 분위기를 지체 없이 회복하는 것뿐이다.
지도자들이 도시와 광장에서 이러한 왜곡된 현실이 곪아 터지도록 계속 방치한다면, 그 결과는 억제되지 않은 증오가 불러올 대학살과 함께 진정한 암흑시대로의 회귀가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6년 오늘, 캐나다 땅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전쟁 구호를 외쳐대는 자들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 할 책임은, 여전히 올바른 도덕적 나침반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