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두바이 여객기 참사 막아낸 주역들… 이스라엘인들의 용기가 빛났다
유대 민족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비극 이후 이스라엘 국가의 결연한 표어가 된 그 유명한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라는 외침은, 적대적인 열방에 의해 다시는 가축처럼 끌려가지 않겠다는 맹세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해하려는 자들에 맞서 결연히 떨쳐 일어나는 불굴의 저항 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다.
"다시는 안 된다"는 그 정신은 바로 수요일 아침, 광기에 휩싸인 오만 국적 조종사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이스라엘 땅으로 추락할 뻔했던 플라이두바이 여객기 안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당시 여객기에는 이스라엘로 향하던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174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범인은 이들을 모두 몰살할 계획이었다.
동료 조종사를 흉기로 수차례 난자하던 이 광기 어린 부기장은 조종실 문을 부수고 난입해 테러범을 단숨에 제압한 몇몇 용감한 이스라엘 승객들의 활약으로 진압되었고, 보잉 737기는 안전하게 사우디아라비아로 회항할 수 있었다.
어떻게 조종사가 흉기를 소지한 채 보안 검색대를 무사통과할 수 있었는가? 그는 단독 범행자였는가, 아니면 경고 신호를 고의로 묵인한 지상 지원 세력이 있었는가? 그가 독자적으로 이 공격을 계획했는가, 아니면 이란의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었는가 등 여전히 수십 가지 의문이 명확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가장 위대한 기적은 기내에 예비 조종팀이 우연히 탑승해 있었고, 그 덕분에 비행기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34,000피트(약 10,360미터) 상공에서 어떻게 이토록 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이 모든 의문들이 낱낱이 파헤쳐지겠지만, 이 악몽 같은 참사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은 칼을 휘두르는 테러범을 제압하느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조종실로 돌진했던 용감한 이스라엘인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온 세상이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스라엘인들의 용기
바벨론 유배지로 끌려가거나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트레블링카의 죽음의 수용소로 무기력하게 행진하던 힘없는 유대인의 2,000년 된 이미지는, 세상이 여전히 머릿속에 간직하고 싶어 하는 선호된 모습이다.
그들에게 있어 그 나약한 모습은 유대인들이 인류를 위해 엄청난 선을 행함으로써 지나치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때, 자신들이 느끼는 질투심과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언제든 그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을 주는 기억 장치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정착하기로 선택한 나라들에 막대한 축복과 지적 자산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들이 부단히 노력해 최고위에 오를수록, 역설적으로 다른 이들이 탁월하지 못한 이유가 유대인 탓으로 돌아갔다.
그 비틀린 논리는 유대인들을 사회에서 제거해 버리면 다른 모든 이들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유대인들이 모든 통념을 거스르는 특별한 성공의 잠재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인류 전체를 이롭게 한 수많은 발명과 혁신, 그리고 문명의 진보를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류의 단 0.2%에 불과한 소수가 인류 전체를 압도하는 이 놀라운 업적의 대다수를 이뤄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바로 그것이 반이스라엘 진영의 신경을 그토록 긁어놓는 것이다! 반이스라엘 무리는 유대인들이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반격할 때 극도로 격분하며, 적들의 손에서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올 때 한층 더 분통을 터뜨린다.
플라이두바이 여객기에서 일어난 사건은 바로 그러한 방어력의 축소판이었다. 사무엘하 23장 8-39절에 기록된 다윗의 용사들, 곧 '기보림(gibborim)'과 같은 담대함과 위용을 지닌 용기 있는 이스라엘 영혼들이 일제히 몸을 던졌고, 자신들이 어떤 불굴의 영성을 품고 있는지를 온 세상에 똑똑히 각인시켰다.
이 사건은 원래 그런 결말로 끝나도록 짜인 각본이 아니었다. 단독으로 행동했든 배후 세력과 공모했든, 이 비열한 오만인 조종사는 불과 3년 전 일어난 참사를 사람들이 잊지 못하도록 초막절(수콧) 한가운데에 또 다른 학살을 자행하기로 작정했다.
유대인 국가는 여전히 기습 공격에 취약하며, 대규모 사상자를 낼 수 있고, 결국 그 모든 영광과 힘을 잃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부기장은 이스라엘이 전능자의 끊임없는 보호 아래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나라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누가 우리를 세우셨고 누가 우리를 지키시는지에 대한 그의 무지가 바로 그의 음모를 파멸로 이끈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이스라엘 승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과소평가한 것 역시 거대한 오판이었으며, 그 오만인 테러범으로 하여금 과거의 수많은 유대인 비극의 계보를 이어 또 다른 학살을 손쉽게 저지를 수 있으리라는 오만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시편 기자가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시편 102:13)라고 노래했듯,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실 정한 때가 분명히 이 나라에 임해 있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인 시온은 2,000년의 방랑 속에서도 그녀를 보존해 오신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받는 창조물이다.
1947년 이 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심으로써, 주님은 에스겔 37장에 예언된 그 마른 뼈들을 일으켜 세우셨고 창조주를 온전히 신뢰하며 전장으로 나아갔던 그 용맹과 담대함의 투혼을 온전히 회복시키셨다!
칼날에 쓰러지고 각 정착국에서 쫓겨났던 무력한 이들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선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의 기념비이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불을 지피시는 "다시는 안 된다"라는 거대한 역사적 동력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이두바이 사건의 참된 본질이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통해 온 세상이 복을 받을 것이며 그들이 모든 대적을 이길 것이라 선포하셨을 때 시작된 거룩한 역사의 연속인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든 해외에서든 유대 민족 전체를 지워버리려 획책되는 절멸의 음모로부터 이번에도 또다시 구원을 받았다.
"다시는 안 된다"는 그분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하는 맹세이며, 그 어떤 미치광이 조종사라도 결코 이를 꺾을 수 없다!
본 기사는 원래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 및 인스타그램에 게재되었으며, 사전 허가를 받아 전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