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 요단강에서 예수님은 제사장이자 왕으로 임명되셨다

The baptismal site of Qasr el Yahud on the Jordan River (Photo: Shutterstock)
요단강에 위치한 카스르 엘 야후드 세례터. (사진: Shutterstock)

이스라엘은 2030년 예수님의 세례 2,000주년을 기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예수님이 요단강의 정확히 어느 지점에 서 계셨는지를 놓고 논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죄가 없으신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왜 회개하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물에 들어가셨을까? 요한은 이러한 놀라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태복음 3:14)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일반적인 정결 의식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므로 이스라엘이 회개해야 한다는 예언자적 촉구였다(마태복음 3:2). 예수님에게는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었다. 신약성경은 그분에게 죄가 없었다고 말씀한다(히브리서 4:15; 베드로전서 2:22). 그럼에도 예수님은 안전한 강둑에 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직접 물속으로 내려가셨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3:15). 그분의 대답은 죄의 고백이 아니라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신실하게 대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그 순간에 동참하셨다. 죄 없으신 메시아는 정결함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위해 구별되어 세워지고자 오셨다.

토라에 기록된 아론의 제사장 위임식은 주목할 만한 전형을 보여준다. 제사장들은 물로 씻김을 받고, 직무를 위한 의복을 입으며, 거룩하게 구별된다. 아론은 기름 부음을 받는다(출애굽기 29:4~7; 레위기 8:6~12). 예수님의 세례가 이러한 레위 제사장 의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의 의복을 입지 않으셨으며,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 출신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내려오셨고,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셨다(마태복음 3:16~17).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이 요한의 세례 이후에 시작됐다고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부어주셨다고 말했다(사도행전 10:37~38). 누가는 예수님이 약 서른 살에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레위인들이 직무를 시작하는 나이와 같다(누가복음 3:23; 민수기 4:3). 이는 의미 있는 연관성을 시사하지만, 예수님이 레위 지파의 후손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이러한 표징들을 종합하면 하나의 공개적인 성별 의식, 곧 예수님의 제사장적 사명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요단강은 단순히 예수님의 공생애가 공개적으로 시작된 장소만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실 죄 없는 대표자로서 이스라엘의 물속에 들어가셨다. 회개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신 것은 제사장 위임식과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 제사장 직분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다 지파의 아들에게 어떻게 제사장 직분이 주어질 수 있을까? 시편 110편이 그 답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맹세하신다(시편 110:4). 창세기는 멜기세덱을 살렘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소개한다. 그는 시내산과 레위 지파의 시대보다 수 세기 앞서 아브라함을 축복했다(창세기 14:18~20). 이는 아론을 통해 물려받는 간접적인 제사장 직분이 아니다. 그 직분은 하나님 자신의 맹세에 근거한다.

히브리서는 이 점을 더욱 강조한다.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그의 축복을 받았다. 더 높은 자가 더 낮은 자를 축복한다는 것이다(히브리서 7:4~10). 이 논증은 이스라엘의 레위 제사장 제도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성경 자체가 레위보다 오래된 권위를 지니고,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세워지는 제사장이자 왕을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의 세례 때 선포된 말씀이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은 시편 2편을 떠올리게 한다. 히브리서 5장은 이 왕권에 관한 시편을 시편 110편과 연결한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동시에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선언하셨다(히브리서 5:4~6). 이어 히브리서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맹세가 레위 지파의 혈통을 초월하는 영구적인 제사장 직분을 확립했다는 것이다(히브리서 7:11~17, 20~28). 신약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 지닌 왕적 정체성과 제사장으로 임명된 사실을 연결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단강에서 시편 110편을 낭송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맹세는 예수님의 직분을 규정하며, 요단강에서의 사건은 그분의 부르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사명이 시작될 때 성령의 기름 부음과 아버지의 선언이 있었다고 보여준다. 사도행전은 그 사역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설명하고, 히브리서는 그 아들이 영원한 제사장임을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례를 그분의 공개적인 제사장 위임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이는 숨겨진 레위 제사장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제사장 직분의 시작이었다.

이 제사장 직분이 더 우월한 이유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거짓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복되는 제사로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레위 제사장들은 죽었고 다른 제사장들로 대체돼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그분의 제사장 직분은 영구적이다. 또한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히브리서 7:23~25). 그분의 사명은 요단강에서 시작해 골고다의 제단을 향해 나아간다. 회개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셨던 죄 없으신 분이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다. 히브리서는 그분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으며,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자신의 백성을 온전하게 하셨다고 선언한다(히브리서 9:12; 10:10~14).

이것이 바로 제3성전을 죄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여길 수 없는 이유다. 히브리서는 반복되는 희생제사가 최종적인 정결함을 가져올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만일 복원된 제단이 속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메시아께서 단번에 드리신 제사의 충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건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신학적 오류는 마치 십자가가 죄의 대가를 완전히 치르지 못한 것처럼 희생제사를 다시 시작하는 데 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유대인의 소망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의 성경에 근거해 정통 유대교에 제기하는 도전이다. 창세기는 레위보다 앞서 제사장이자 왕인 인물을 등장시키며, 시편 110편은 하나님의 맹세에 근거한 제사장 직분을 가진 분을 약속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아라고 밝힌다. 신약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 독자라면 히브리서의 권위만으로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핵심 쟁점은 예수님이 그 약속을 성취하셨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논증은 그 결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왜곡해 묘사하지 않고 솔직하게 제시돼야 한다.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지워버리지 않는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그 역사 속에 들어오셨으며, 그분을 통해 축복이 열방에 이른다.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가지들을 향해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로마서 11:18). 열방은 이스라엘의 소망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것이지, 그 소망이 전해진 백성을 대체하거나 경멸하도록 초대받은 것이 아니다.

순례자들이 요단강에 도착할 때, 그 강은 정확한 위치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진정으로 중요한 질문으로 그들을 이끌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사랑받는 아들은 물속으로 내려가셨고, 제사장적 사명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으셨으며, 골고다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그분은 부활하셨고, 그분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히 지속된다. 요단강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그 사명으로 들어가는 문턱이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통해 소망은 지금도 열방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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