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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랄라 암살 2주년: 이스라엘 정보관들 “언제 잠들고 무엇을 먹는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베이루트에 운집한 수만 명의 인파… 헤즈볼라 수장 추모

 
2026년 9월 27일, 친(親)이란 성향의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암살된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사망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가 당신의 복수를 할 것이다"라는 슬로건과 그의 초상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DPA via 로이터)

이스라엘 군에 의해 헤즈볼라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가 암살된 지 2주기를 맞아, 수만 명의 레바논 시아파 주민들이 추모 집회에 운집했다.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 국방군(IDF) 관계자들은 10년에 걸친 추적 끝에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던 기밀 특수작전의 극적인 세부 전모를 새롭게 공개했다.

베이루트 남부 헤즈볼라의 거점인 다히예(Dahiyeh) 민간인 거주 지역 지하 벙커에 은신해 있던 나스랄라를 일거에 폭사시킨 기습 공습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해 온 이 신화적 인물은 이란 중심의 '저항의 축'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헤즈볼라의 무기고를 이란제 무기로 막대하게 채워 넣어,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이스라엘 측에서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공포를 조장해 왔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가 향후 이란 정권의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까지 거론된다는 관측이 나돌 정도였다. 그의 막강한 정치·영적 위상과 반이스라엘 투쟁 중 맞이한 '순교'는 전 세계 시아파 무슬림 사이에서 그를 현대의 성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스랄라의 죽음은 전례 없는 연쇄 타격의 서막이었으며,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이란의 대리 세력을 급격히 쇠락시켰다. 오늘날 대다수 레바논 정당들은 한때 국가를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인물의 추모식에 대표단조차 파견하지 않을 정도로 헤즈볼라는 고립되었다.

나스랄라와 같은 운명을 맞을까 두려워 여전히 생존해 있는지조차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중의 시선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는 관영 매체를 통해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는 화려한 수사의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하메네이는 나스랄라를 "아랍의 영웅적 군주이자 저항 전선의 위대한 상징"이라 칭하며, "나스랄라는 레반트 지역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선지자들과 그 후계자들을 제외하면 그 고대 땅에서 비견할 자가 없는 독보적인 인물이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연구원 모란 레바노니(Moran Levanoni) 예비역 중령은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에 헤즈볼라가 베이루트 대규모 군중 집회를 통해 레바논 정치 중심부로 복귀하려는 상징적 시도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헤즈볼라는 여전히 레바논 정계 내부에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입지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습이 단행되기 수년 전부터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나스랄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히 파악한 종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두고 있었다.

공군 정밀표적제거실 작전 장교인 R 예비역 소령은 와이넷 뉴스(Ynet News)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발발 초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의 관심이 온통 가자에 쏠려 있다고 판단해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전면전에 임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으며, 비교적 일상적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공습 당시 군사정보국 레바논 표적과를 지휘했던 G 소령은 와이넷에 자신의 팀이 2년 동안 "그의 생활 방식과 상시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나스랄라라는 인물 자체를 철저히 연구했다"고 증언했다.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 즐겨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주로 누구와 동행하는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상을 가장 내밀하고 정확한 디테일까지 파헤쳤다."

G 소령은 이어 "한편으로 나스랄라는 늘 철저한 비밀 속에 움직이는 인상을 풍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깊숙이 개입하며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세 판단 회의부터 예산 집행, 전력 증강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관여했다. 라드완 부대(특수부대)에 투자할지 미사일에 투자할지까지 직접 결정할 만큼 전방위로 개입했다"고 덧붙였다.

헤즈볼라 통신망을 마비시킨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작전 이후에도 나스랄라는 극단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인 전황을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에는 치명적인 제한을 겪게 되었다.

한 시아파 성직자가 사우디 일간지 아샤르크 알-아우사트(Asharq Al-Awsat)에 증언했듯, 이스라엘이 현장 지휘관을 암살할 때마다 나스랄라는 "사태를 똑똑히 볼 수 있게 해주던 눈 하나씩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G 소령은 "그는 사태의 규모를 가늠하고 온전한 전체 판세를 파악하는 데 극심한 난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가 새로운 은신처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우리가 이미 파악하고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현장 상황의 흐름을 오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 장소는 그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었으며, 일련의 사건 흐름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 자신이 당장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 "그는 어쩌면 잘못된 전제 때문에 얼어붙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호출기 공격과 고위 간부 암살을 통상적인 타격 공방 수준으로 치부하며, 우리가 이를 전면전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전했다.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나스랄라의 일상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공습 당일 그가 더 안전한 은신처로 대피하는 대신, 다히예의 다층 주거용 건물 지하 벙커에 머무는 쪽을 택했다고 증언했다.

공군 '나할랏 빈야민(Nahalat Binyamin)' 부대에서 IDF 표적 은행을 총괄했던 S 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2024년 9월 27일 단행된 공습 당시 IDF는 총 83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R 장교는 와이넷에 "그곳은 결코 작은 시설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지하 구조 때문에 83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이는 지극히 전문적이고 정밀한 타격 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스라엘을 향한 가혹한 국제적 비판 속에서, 군 당국의 작전 수립 과정에서 부수적 피해(민간인 피해) 최소화는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었다. G 소령은 "나스랄라가 워낙 거물급 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수적 피해 검토는 작전 승인 절차의 필수적인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국제 무력충돌법(전쟁법)은 군사적 표적 타격 시 예상되는 군사적 이익이 예상 민간인 피해와 비교해 '비례성(proportionality)'을 충족할 경우 비전투원에 대한 불가피한 부수적 피해를 허용한다.

G 소령은 "부수적 피해를 정보 차원에서 평가하려면 건물의 모든 방, 모든 가구에 몇 명이 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발생한 부수적 피해는 당초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적었다"고 짚었다.

"실제 공습 전반에서 발생한 무고한 민간인 피해는 30명이었다. 나스랄라와 함께 현장에서 폭사한 헤즈볼라 핵심 요원들의 수와 비교하면 정확히 1대 1 비율이다. 비례성의 원칙을 벗어난 부분은 전혀 없었다."

R 장교는 나스랄라의 제거가 헤즈볼라는 물론 레바논 전선 전체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헤즈볼라가 "나스랄라가 없이는 이전과 같은 조직이 될 수 없다... 10월 8일 당시 보유했던 군사 역량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체 전력 증강 능력은 완전히 소멸했으며,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 역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