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 욤 키푸르와 메시아의 속죄 제사
로마 군단의 파괴에서 살아남은 유대 지도자들은, 서기 70년 성전이 파괴되기 전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욤 키푸르 제사를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후세에 기록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다.
개인의 신앙과 무관하게, 인간의 영혼은 과거의 실수와 원한을 뒤로 하고 더 건강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갱신에 대한 열망은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 중 하나인 욤 키푸르, 즉 ‘속죄의 날’의 핵심이다.
이 명절을 지내는 동안 신자들은 25시간 동안 금식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하나님과 서로에게 용서를 구한다. 욤 키푸르는 깊은 성찰과 기도, 영적 정화의 시간으로, 전통적으로 종교적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포함해 이스라엘 유대인의 절반 이상이 이를 지킨다.
공동체 정화 의식은 초기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각 종교 문화마다 고유한 의식 체계와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제사 의식은 결국 기도 중심의 예배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변혁적인 변화는 약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으며, 서기 70년의 제2성전 파괴로 그 정점을 이뤘다.
성전이 파괴됨에 따라 모세 율법에 규정된 매일의 제사는 중단되었으며, 여기에는 욤키푸르에 드리는 연례 속죄일 제사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난관에 직면한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당면한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시적인 해결책으로, 신이 명하신 제사를 기도로 대체하기로 하는 혁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유대 전통의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탈무드에 따르면, 진정한 문제는 성전이 파괴되기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로마 군단의 파괴에서 살아남은 유대 지도자들은 성전 파괴 전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욤키푸르 제사를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후세에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주장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아들이셨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성전이 존재했던 마지막 40년 동안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믿게 만들었는지와 같은 수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따르면: “우리 랍비들은 가르치기를: 성전이 파괴되기 전 마지막 40년 동안, [‘주님을 위한’] 제비뽑기가 오른손에서 나오지 않았고, 진홍색 끈이 하얗게 변하지도 않았으며, 가장 서쪽에 있는 등불이 빛나지 않았고, 헤칼(성전)의 문들은 저절로 열리곤 했다” (손치노 탈무드, ‘요마’ 편, 39b).
예루살렘 탈무드에 따르면: “성전이 멸망하기 40년 전부터 서쪽의 빛이 꺼졌고, 진홍색 실은 여전히 진홍색을 띠었으며, 주님을 위한 제비뽑기는 항상 왼손에서 뽑혔다. 사람들은 밤에 성전 문을 닫아두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예루살렘 탈무드, 제이콥 노이스너 번역, 156f쪽).
이 두 인용문은 모두 성직자와 일반 백성들이 더 이상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속죄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신성한 징후로 해석했던 네 가지 비범한 징조를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 징조는 대제사장이 욤키푸르에 하나님께 바칠 두 마리 염소 중 어느 것을 제물로 삼을지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는 것과 관련이 있었는데, 이는 성경 레위기 16:7-10에 묘사된 관습이다. 이 의식에서 제비는 때로는 대제사장의 오른손에, 때로는 왼손에 떨어지곤 했다. 수세기에 걸쳐 제비가 오른손에 떨어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길조로 여겼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기 전 40년 동안 제비는 예외적으로 드문 확률로 왼손에 떨어지는 일이 계속되었다.
두 번째 징조는 제사 의식 중에 사용되던 진홍색 양모 끈과 관련이 있었다. 이 양모 끈은 참석자들의 눈앞에서 기적적으로 하얗게 변했는데, 이는 이사야서 1장 18절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처럼 희어질 것이요.”
탈무드에 따르면, 시몬 하차디크(의로운 시몬)가 제사장을 맡고 있던 시절에는 이 기적이 매년 일어났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이 기적이 산발적으로 일어났으나, 성전이 파괴되기 전 마지막 40년 동안에는 진홍색 양모가 결코 하얗게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세 번째 징조는 성전에 있는 메노라(촛대)의 일곱 등불 중 가장 서쪽에 있는 등불과 관련이 있었다. 모든 등불에는 기름이 채워져 매일 저녁 불이 켜졌으나, 아침이 되면 오직 하나, 즉 가장 서쪽에 있는 등불만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의 징조로 여겨졌다. 탈무드에 따르면, 아하스 왕이 메노라의 디자인을 변경하여 이 기적이 일어나기 어렵게 만든 시기를 제외하고는, 이 기적이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하스 왕이 죽은 후 기적은 다시 시작되었으나, 성전이 파괴되기 40년 전을 기점으로 중단되었다.
네 번째 징조는 성전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례적이고 불안한 현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탈무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무드를 기록한 유대 학자들은 마지막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실제로 욤키푸르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가장 의문스러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기 30년에 일어난 이 변화 40년 전에는 어떤 사건들이 전개되었는가?
우리는 갓 태어난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이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가 예수가 태어났을 때 살아 있었으므로, 메시아는 늦어도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나셨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는 기원전(B.C.)에서 서기(A.D.)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0년’이 포함되지 않으므로, 기원전 4년부터 서기 30년까지의 연수는 정확히 33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서 53장의 예언을 성취하며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을 때 33세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 속죄의 죽음은 성전이 멸망하기 정확히 40년 전에 일어났다. 이 사건은 동시대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으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매년 드려지던 속죄일(욤 키푸르)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셨다.
그 순간부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죄의 용서가 더 이상 제물의 피를 흘리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히브리서 9장에 반영된 것처럼, 새로운 시대가 밝아왔다.
메시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소나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들에게 뿌려 육체의 정결을 얻게 하였거니와, 영원한 성령을 통해 흠 없는 몸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더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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