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당시 하마스 테러범들이 침투한 이스라엘 최원거리 도시, 그날 이후 영원히 달라져
전선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오파킴 시장, 방호시설·민간 긴급대응 인력·트라우마 치료 지원 강화
가자지구 국경에서 22km 떨어진 오파킴은 스스로를 최전선 도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10월 7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이치크 다니노 시장은 하마스의 공격이 시민들을 보호하는 도시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설명했다.
다니노에게 10월 7일 첫 로켓 공격으로 경보가 울렸던 기억은 끔찍한 깨달음과 떼어놓을 수 없다. 대피소로 달려간 주민들이 시내 공공 방공호의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다니노는 “그 순간, 오전 6시 29분에 제가 생각한 것은 주민들이 공공 방공호로 달려가지만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점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우리 주민들에게 위험이나 안보 위협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때 이미 테러범 18명이 오파킴에 도착한 상태였다. 주민들이 방공호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무장 괴한들이 총격을 가했다.
스데롯이나 가자지구 바로 주변의 키부츠들과 달리 오파킴은 전통적으로 ‘가자 접경 지역(Gaza Envelope)’으로 지정된 구역에 속하지 않는다. 국경과의 거리는 이 도시가 직면한 위협에 대한 인식과 개인 주택 내 방공호 보급 정도에 영향을 미쳐 왔다.
다니노는 테러범들이 소총과 수류탄, 폭발물, 탄약을 가득 실은 픽업트럭 두 대를 타고 도시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 무기는 “텔아비브 전체를 불태울” 수 있을 만큼 많았다.
주민들이 테러범들과 맞서기 위해 반바지와 야구 모자를 착용한 채 거리로 나서면서 오파킴은 전쟁터가 됐다. 일부 주민들은 개인 총기로 무장했고, 다른 주민들은 손에 잡히는 도구를 들었다. 결국 오파킴 주민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리가 아닌 방어에 의존하다
다니노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 시의 치안 인력은 두 배로 늘었으며, 시는 무장한 주민 50명 이상으로 구성된 민간 대응팀을 설립했다.
그는 “만약 불행하게도 안보 사건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오후 2시에 군인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자체 인력으로 처음 몇 분 안에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당국은 또한 공공장소에 약 2,000개의 첨단 카메라와 센서를 설치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조치는 ‘세이프 오파킴 360(Safe Ofakim 360)’이라는 시 차원의 프로그램으로, 도시 외곽을 따라 차단시설을 설치한 것이다. 오파킴에는 출입구가 다섯 곳 있으며, 이 중 세 곳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폐쇄된다. 나머지 두 곳은 보안 인력이 배치된 상태로 개방된다.
이러한 조치가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시 당국이 소셜미디어에 세이프 오파킴 360을 발표하자 일부 댓글 작성자들은 차단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주민들을 게토 안에 가두는 것과 같다고 비교했다. 또한 도시 주민들을 ‘감금’하기보다 정부가 국경 보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니노는 이러한 변화가 보안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안전감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복을 향한 길
오파킴에서 벌어진 직접적인 공격은 10월 7일 다음 날 오전 2시 20분에 끝났지만,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아직 숨어 있을지 모르는 테러범들을 찾기 위해 도시를 “집집마다, 거리마다” 수색했다. 작전은 월요일 오후까지 계속됐다.
그날 오후 5시, 다니노는 페이스북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는 “주민 여러분, 오파킴에는 더 이상 테러범이 없습니다”라고 발표했던 것을 회상했다. “우리는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함께 이겨낼 것입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주민들의 안전감을 회복시키려 노력하면서도, 그는 집에서 현관문을 가구로 막아 놓은 채 잠을 잤다고 말했다.
그는 “제 안에는 이런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동체와 주민들의 일상을 가능한 한 빨리 회복해야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테러범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긴장감이 8개월 동안 계속됐다고 말했다.
2023년 10월 11일, 자원봉사 심리학자 30명이 오파킴에 도착했다. 다니노는 이들에게 다음 날 아침부터 시 소속 직원으로 일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이 동의하자 다니노는 도시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바로 그때 저는 가장 힘들고 끔찍한 순간에도 모든 주민이 이 도시에 머물도록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라고 말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심리적 피해의 흔적은 여전히 뚜렷하다.
다니노는 주민 5,000명 이상이 다양한 정도의 장애를 입은 적대행위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시 당국은 심리학자와 트라우마 치료사 9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지만, 그는 “대기자 명단은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의 부흥입니다’
10월 7일 이후 오파킴의 이야기는 보안 강화와 트라우마 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7년 전 오파킴의 주민 수는 약 2만 4,000명이었다. 이번 주에는 8만 번째 주민이 이곳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다니노는 이러한 추세를 고려하면 오파킴이 지난 3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오파킴시의 부흥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부흥입니다.”
오파킴은 현재 농업에 뿌리를 둔 도시의 역사를 미래의 농업기술(AgriTech)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연구시설을 개발하며, 실험 농업을 위한 부지를 배정하고 있다.
공격 발생 3주년을 맞아 다니노는 참석자들에게 오파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일어나 묵념해 달라고 요청하며 발언을 마쳤다.
10월 7일은 가자지구와의 거리를 바라보는 오파킴의 인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국경의 지리적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파킴 주민들의 마음속에서 국경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