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에 억류됐던 전 인질, 탈출 시도와 억류자들과의 대화 증언
하마스 테러조직에 납치되는 장면이 영상에 포착됐던 전 인질 아비나탄 오르가 이스라엘 채널12 뉴스의 우브다(Uvda)에 출연해 억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노아 아르가마니와 떨어진 채 납치됐다.
아비나탄은 노바 음악축제에서 납치된 뒤 다른 인질들과 완전히 격리된 채 지하에 억류됐다.
아비나탄은 채널12에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잊히는 것, 즉 “또 다른 론 아라드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1986년 레바논에서 전투기에서 탈출한 뒤 붙잡힌 이스라엘 공군 장교 론 아라드를 가리킨 것이다.
아라드는 시아파 테러조직 아말에 억류됐다가 이후 헤즈볼라로 넘겨졌다. 이송된 뒤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망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아라드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정보에 근거해 그의 유해를 찾기 위해 올해 3월 레바논에서 작전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비나탄은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는 동안 수개월에 걸쳐 실행할 탈출 계획을 세웠다. 그는 훔친 곡괭이와 LED 조명, 전선을 이용해 비좁은 감방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파며 탈출을 시도했다.
오르는 채널12에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이 내 운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내 선택의 자유가 아무리 제한돼 있었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좁은 공간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오르는 감방 안에 쌓여 있던 모래주머니 더미 뒤를 살피다가 바람을 느꼈고, 자신이 가자지구 깊은 지하 터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공기의 흐름이요. 터널 안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죠”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6개월 동안 감방에서 발견한 연장선을 이용해 모래주머니를 조금씩 파헤쳤다.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보안 카메라에 들키지 않도록 쓰레기봉투로 작업 흔적을 가렸다.
아비나탄은 납치범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자지구의 어느 지역에 있는지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아비나탄은 탈출용 물품도 준비했다. 발견한 옷들과, IDF 병사들을 만날 경우를 대비해 히브리어로 “인질”이라고 적을 예정이었던 자루가 포함됐다. 탈출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작별편지도 썼다.
그는 채널12에 “유언장까지 썼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아비나탄은 텔레비전으로 인질 석방 촉구 시위를 봤지만, 자신의 부모는 그런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부모님이 ‘나우(Now)’ 운동에 속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돌아온 뒤 부모를 만났을 때, 부모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에게 사과했다고 전했다.
“부모님은 저를 만나자 ‘우리가 원망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러워요’라고 했습니다.”
오르는 “사람은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진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가자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의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진실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비나탄은 “부모님은 저를 위해 미친 듯이 싸웠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싸우는 동시에 다른 것들을 위해서도 싸웠습니다. 두 가지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의견 차이는 생사의 문제였습니다. 지금 당장 생명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생명까지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오르는 부모의 판단을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때 바로 합의를 했다면 제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틀이나 사흘 뒤, 혹은 한 달, 두 달, 1년, 2년, 10년 뒤에는 다른 누군가가 제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납치된 지 1년이 넘은 뒤, 아비나탄은 마침내 땅을 파고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갑자기 가방을 든 어린 여자아이가 걸어가는 게 보였고, 몇 분 뒤에는 마차와 암말을 끌고 지나가는 사람도 봤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납치범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수개월 동안 밤에만 작업해왔던 탓에, 몇 달 만에 처음 탁 트인 하늘을 보자 방향감각을 잃었다.
그는 감방으로 돌아가 밤에 다시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결국 붙잡혔다.
감방으로 끌려간 뒤 그는 고문을 당했다. 다시 붙잡힌 뒤에도 1년을 더 억류됐으며, 강제적인 굶주림과 구타, 감방 문에 쇠사슬로 묶이는 등 끔찍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아비나탄은 억류 기간 납치범들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대화도 나눴다.
한 납치범은 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 공격을 반복할 계획이라며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유럽으로 도망가야 한다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정도 함께 있다가 가방을 싸서 유럽으로 가라”고 말했다. “왜 그런지 아나? 우리가 10월 7일을 다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너희를 계속해서 학살할 것이다.”
오르는 두려워하는 대신 이에 맞받아쳤다. 그는 아랍인들이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유대인들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테러리스트에게 말했다.
아비나탄은 “그를 바라보며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가 ‘왜?’라고 묻기에 저는 ‘가자지구를 봐.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폐허고, 모든 것이 죽음이야. 전쟁이 끝나고 국경 검문소가 열리면 너는 이집트로 떠날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안 가?’라고 묻자 그는 ‘여기가 내 집이기 때문이야’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아. 여기도 내 집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납치범 가운데 한 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100년 뒤에도 여기에는 유대인들이 있을 겁니다. 100년 뒤에도 여기에는 아랍인들이 있을 겁니다. 그 10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겁니까? 내 아이가 당신의 아이를 죽이고, 당신의 손주가 내 손주를 죽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을 만큼 현명해질 겁니까? 우리는 분명히 이곳에서 살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게 될 겁니다.”
아비나탄 오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한 가자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이뤄진 마지막 인질 석방에서 풀려났다. 그는 2년간의 억류 끝에 2025년 10월 13일 석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