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셔와의 연관성: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에서도 인격은 여전히 중요한가?
곧 다가올,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스라엘 총선에는 흔히 간과되는 ‘코셔와의 연관성(Kosher Connection)’이 있다. 이는 식생활 규정이나 여러 후보와 정당이 선호하는 특정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코셔(kosher)’라는 단어는 우리가 먹는 음식의 종류나 음식을 준비하는 방법과 장소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본래 정직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뜻한다. ‘코셔’하다는 것은 정당하고, 도덕적이며, 신뢰할 수 있고, 말과 삶이 일치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이는 태도와 행동 모두에서 비난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에 이르게 된다. 인격은 여전히 중요한가? 투표소 안에서도 인격을 고려하는가? 우리가 표를 던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더 높은 기준에 따라 국민을 섬길 자격이 있는지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는가? 그 사람의 도덕성과 동기, 방법은 ‘코셔’한가? 역사가 어떤 지표가 된다면, 고대 이스라엘은 이 점에서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이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지도자들의 오랜 역사가 있으며, 그 결과 그 땅의 백성들은 온갖 혼란과 무질서, 재앙을 겪었다.
사실 지도자에는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 하나는 대중의 여론(public consensus)에 따라 이끄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받기 전까지 입장을 정하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대중의 여론에 따라 이끄는 지도자들은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알아보기 위해 손가락을 공중에 세우고 다닌다. 이런 방식으로 이끄는 사람들은 국민에게 반드시 더 유익한 일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이끈다. 정치 세계에는 오직 대중의 여론에 따라 이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또 다른 유형의 리더십이 있다. 개인적 신념(personal conviction)에 따라 이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거나 말하든 그 신념에 따라 이끈다. 이러한 리더십은 사람들이 단순히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도록 이끈다. 개인적 신념을 가진 지도자들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고 나서야 그것이 실제로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이들은 정치에서도 인격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코셔’한 유형의 지도자들이며, 지금 정치 무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가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첫 번째 시기는 아니다. 2,600년 전 이스라엘은 중대한 지도력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지도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에스겔 22:30). 이스라엘 국민들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투표소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찾고 계신다. 오늘날 ‘무너진 틈에 설’ 사람, 인격이 여전히 중요하며 코셔한 것이 하나님께 복받는 지도력에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 시절 유다에는 요시야와 같은 코셔한 왕들이 몇 명 있었고, 히스기야도 어느 정도 그러한 왕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드기야가 왕좌에 앉았고, 그와 함께 인격은 더 이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가 자리 잡았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부패가 만연했다. 그들은 더 이상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민족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세 가지 놀라운 축복을 주셨다. 주님(Lord), 율법(Law), 그리고 땅(Land)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하셈(HaShem)은 그들에게서 번영과 능력과 보호를 베푸시는 주권적인 손길을 거두셨다. 그들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인격이 결국 정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바빌론 포로 생활에 빠지게 됐다.
이는 오늘날 미국에 있는 우리와 이스라엘의 친구들 모두에게 경고이자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가 돼야 한다. 우리 모두는 “오늘날에도 국가 지도자들에게 인격이 여전히 중요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라고 기록돼 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인격과 정직함으로 자신의 백성을 이끌 사람, 마음이 ‘그분께 충성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친구들이 투표할 준비를 하는 지금, 그들이 하나님께서 여전히 주권자이심을 깨닫는 올바른 인식(right perception)을 가지고 투표소에 들어가도록 기도하자. 하나님은 올바른 유형의 지도자를 찾고 계시는 분이다. 그분은 한 사람을 “찾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고 계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도망친다. 맨 처음 에덴동산으로 돌아가 보라. 남자와 여자를 찾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은 숨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관여하고 계시며 여전히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올바른 인식을 가진 지도자들에게 투표해야 할 때다. 하셈은 특히 국가 지도자를 선택할 때 인격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으신다.
또한 이스라엘의 친구들이 올바른 인식뿐 아니라 올바른 사람(right person)에게 투표하도록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고 계셨다고 말씀하셨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남자(man)’라는 표현은 남성이나 여성을 모두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 지도자 중 한 명인 골다 메이어의 지도력을 경험했기에 이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라는 표현은 단수형이다.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위대한 국가와 기관, 운동의 역사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출애굽의 모세, 바젤의 헤르츨, 제2차 세계대전의 처칠, 민권운동의 킹, 현대 이스라엘 국가 건국 초기의 벤구리온 등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계획이나 프로그램,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무너진 틈에 설’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에는 올바른 인식을 갖추고 올바른 사람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위치(right position)에 서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 나라를 위해 무너진 틈에 서려면 인격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모세가 르비딤에서 했던 일이다. 코셔한 지도자들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면의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남성과 여성들이다. 외부의 압력이 가해질 때 다른 사람들이 물러서더라도 이들은 원칙 위에 굳게 선다. 이들은 자신의 백성을 대신해 무너진 틈에 선다.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또한 이스라엘 국민이 올바른 관점(right perspective)을 가진 지도자를 선출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코셔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이 마주하는 청중은 오직 한 분이라는 뜻이다. 하셈은 “내가 찾았다… 한 사람을… 무너진 틈에 설 사람을… 내 앞에서”라고 말씀하셨다. 지도자들은 궁극적으로 주님께 책임을 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의 섬김이 다른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기독교 성경은 국가의 통치 권력에 지도자들을 세우시는 분이 주권자이신 주님 자신이라고 강조한다(로마서 13장).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관점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지도자들이 여론의 바람이 바뀌더라도 자신의 정책과 입장을 바꾸지 않고 지킬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러한 관점을 갖는 것은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도록 붙들어 준다. 유권자들은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1)라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올바른 목적(right purpose)을 가진 지도자가 선출되도록 기도하는 데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셈은 “내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내 앞에 서서 내가 그 땅을 멸하지 않게 할 사람을 찾았다”(에스겔 22:30, 강조 추가)라고 말씀하신다.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쓰임받아 국가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사례를 보았다. 이스라엘 땅은 하셈 자신의 소유다.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나라보다 국가안보를 의제의 최우선에 두는 올바른 목적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자신들을 말살하려는 적대 세력에 사방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이번 선거는 현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중 하나이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선거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느부갓네살의 운명에 담긴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분(하셈)께서 능히 낮추심이라”(다니엘 4:37).
가장 극단적인 후츠파(chutzpah), 즉 뻔뻔함은 부패하고 타협한 후보들에게 모범적인 지도력을 기대하는 것이다. 투표소에서 개인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점검 목록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 목록의 맨 위에 반드시 다음 질문을 올려놓아야 한다. 그 사람은 코셔한가? 그들에게 ‘코셔와의 연관성’이 있는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오염되는 정치 세계에서도 인격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총리직을 결정하는 최종 선거에서 크네세트의 61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느라 분주하다. 공통의 이해관계, 때로는 그다지 공통적이지 않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과정에서 타협과 잠재적인 부패가 만연해 있다. 지금 모든 사람이 궁극적인 연립정부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연립정부 파트너’가 바로 주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찾고 계신다… 한 사람을… 무너진 틈에 설 사람을… 그분 앞에서… 그 땅을 위해. 에스겔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비극적인 말씀이 기록됐다. “그러나 찾지 못하였으므로”(에스겔 22:30).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며”(시편 122:6) 다가오는 선거를 앞둔 이스라엘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에스겔의 “찾지 못하였으므로”라는 말씀이 오늘날에는 다시 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자. 10월 27일 이스라엘 총선의 모든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코셔에 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게 될 것이다. 인격은 여전히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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