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 유럽 시위의 허위성과 위선

Demonstrators gather behind a Palestinian flag in Paris, France on October 24, 2026. (Photo: Davood Maeili via Reuters)
2026년 10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팔레스타인 국기 뒤에 모여 있다. (사진: 다부드 마에일리/Reuters)

‘시위’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들 말한다. 시위는 사회에 존재하는 자유를 증명하며, 활발한 의견 충돌과 토론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가 남용돼 분열과 적대감, 혼란, 심지어 반유대주의까지 조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이 바로 지금 유럽 대륙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열악한 학교 환경에 항의하는 학생운동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진 시위가 거의 즉시 본래의 불만 사항과 무관한 방향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시위대가 이 운동을 장악하면서 시위는 약탈과 경찰관 폭행, 방화, 역사적으로 존경받아 온 기념물과 건축물의 파괴로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했고, 쿠피예로 얼굴을 가린 이들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효과적인 것으로 대체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려는 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이 9월 21일, “9월 17일 교사들의 파업 이후 파리 교외 크레테유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고등학교(Lycée Antoine-de-Saint-Exupéry)”에서 이른바 시위가 시작된 이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본래의 쟁점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는 과밀 학급과 심각한 교사 부족, 노후화된 학교 건물, 정부의 교육 예산 부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문제는 정당한 불만으로 인정받을 만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자나 급진 이슬람주의자에게 생산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학습 환경을 조성하려는 열망은 반드시 그들의 이타적인 목표 목록에서 최우선 순위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왜곡된 이념이 파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기존 체제는 고쳐 쓰기에는 너무 결함이 많으므로 완전히 없애버리는 편이 낫다.

그들에게 자본주의 사회는 부분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체가 착취적인 체제다. 이윤은 악으로 규정되며, 근면과 혁신, 추진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경제적 상승은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획일적인 체제와 완전히 상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도입하려는 기계적이고 영혼 없는 대체 체제를 실현하려면 먼저 과거의 성취를 파괴하고,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우위를 갖지 못하는 현재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결핍과 복종,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절대적인 순종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둔 급진 이슬람 이념까지 결합하면, 그러한 수동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유일한 방법은 폭력과 공포, 극심한 혼란뿐이다. 바로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모든 현상이다.

이는 한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학생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일까?” 교직원이 충원되면서 파업이 종료됐고 결국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음에도,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혼란이 더욱 격렬하게 폭발했기 때문이다.

“파리와 인근 지역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출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했으며, 며칠 만에 북부의 릴에서 남부의 마르세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비슷한 장면들이 보고됐다. 학생들이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고, 바리케이드를 지키고, 교직원을 폭행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경찰의 대응과 극좌 세력의 개입 여부를 둘러싼 의문이 제기됐다. 시위 운동이 시작된 이후 100곳이 넘는 고등학교가 피해를 입었다.”

학생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려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왜 스스로 자신들의 학교를 파괴하겠는가? 그리고 교사 수가 부족하다고 불평하던 바로 그 학생들이 왜 교사들을 폭행하겠는가? 어느 것 하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저녁 뉴스에서 목격하는 참상이 실제로 프랑스 문화를 파괴하려는 치밀하게 조직된 시도이며, 이 무정부주의자들이 세우려는 체제와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을 없애려는 시도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의 모습을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서구 사회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기를 원한다. 이른바 ‘적색·녹색 동맹(red/green alliance)’은 ‘모든 것을 삭제한다’는 목표를 향해 자신들의 자원을 결집했다.

표현의 자유와 신앙생활의 자유, 성공의 정점에 올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삶을 제공하려는 꿈은 모두 이 괴물들이 도입하려는 절망과 무력감으로 가득한 삶의 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물론 권력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려는 고된 삶에서 특별히 면제되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역사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의 지도자들이 “일반 시민들이 겪는 경제적 현실과 만성적인 물자 부족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매우 특권적이고 배타적이며 호화로운 생활 방식”을 누렸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토록 격렬하게 비판했던 계급투쟁은 성공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스탈린과 차우셰스쿠, 티토, 마오쩌둥 같은 인물들에게 궁전 같은 저택과 대규모 사유지는 용인된 생활 방식이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성향의 스트리머 하산 피커의 패션 취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같은 디자이너 정장과 넥타이를 두 번 이상 착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의상 구입 비용은 수만 달러에 이를 것이다.

그는 부유층의 소비 습관을 틀림없이 비난하겠지만, 정작 자신은 매달 막대한 돈을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누리는 호화로운 삶이라는 은밀한 즐거움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가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스스로 만든 규칙은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표리부동한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노골적인 위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유럽은 자유와 권리,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세력들에 의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장악되고 있다. 그들은 현지 당국을 힘으로 제압해 국가들을 차지할 것이다. 지도자들이 이 무정부주의자들을 국가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맞서 싸울 의지가 없다면, 그 세력에 압도당해 무력으로 나라를 빼앗길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국가적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군대 동원 가능성이라도 언급한 유일한 지도자는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다. 그러나 그 역시 자국에서 벌어지는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직 군대를 소집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나라가 불길에 휩싸이도록 방치하고 있는 나머지 유럽 지도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가짜 시위 운동이라는 구실에 속아 넘어감으로써, 찬란했던 문화들이 무력에 의해 장악되고 파괴돼 결국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는 과정을 자신도 모르게 돕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달을 때쯤이면 이미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가 완성된 뒤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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