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구호는 두 국가 해법을 부정한다

Pro-Palestinian protesters hold a banner saying
2023년 12월 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강에서 바다까지…’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Shutterstock)

유대인이기도 한 영국 외무장관 에드 밀리밴드라면, 거의 매일 열리는 반이스라엘 시위 중 한 곳에서 수많은 영국 시민들이 외치는 “강에서 바다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라는 구호를 들어봤을 법하다.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이 표현은, 시위대의 관점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되는 팔레스타인 국가라면 유대·사마리아와 가자지구를 포함한 그 모든 영토를 차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타협의 여지가 없는 요구는 단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만의 주장이 아니다. 이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란,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지도자로 나서는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다.

일부 사람들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수장 마흐무드 압바스를 언급하며 그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 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을 통한 사상 주입에 의해 반박되고 완전히 무너진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아랍인의 땅을 점령하고 있으며, 적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배운다.

따라서 모든 실질적인 의미에서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구호를 공개적으로 외치는 것은 두 국가 해법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밀리밴드는 “두 국가 해법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관해서라면, 이 정당과 이 운동, 이 정부는 ‘우리는 여러분이 성공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내 질문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쪽에는 유대인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고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팔레스타인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 운동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다른 한쪽에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열망을 없애려는 시도는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확언하는 정부 장관이 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이 두 개념은 근본적으로 서로 정면충돌한다. 그중 하나는 양측이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오랜 갈등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어떤 타협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선의를 전제로 한다.

반면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모든 가식을 벗어던진 채, 어떠한 타협도 없고 영토를 나누려는 시도도 없으며, 자신들이 명백히 경멸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까? 밀리밴드와 그의 정부는 본질적으로 거리의 목소리에 묻혀버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거리의 시위대는 이러한 구상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밀리밴드만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압도적 다수의 유엔 회원국들도 같은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프랑스와 캐나다, 호주의 지도자들 역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 놀랍게도 미국의 공식 정책 또한 이러한 입장에 동의한다.

말할 것도 없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모로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이집트 등 많은 아랍 국가들도 이 구상을 지지한다. 이들 아랍연맹 회원국은 1967년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삼아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모든 진전의 가능성을 마비시키는 교착 상태다. 세계 지도부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두 국가 해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합의를 승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당사자들은 파이의 한 조각이 아니라 전체를 차지하는 데만 철저히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굳건히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철학만이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라고 믿고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 중 하나에 어떻게 해결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깊이 얽혀 있어 도저히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는 문제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현실에 도달하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밀리밴드와 다른 모든 지도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사실상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알면서도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상을 계속 지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하나의 추측성 답변은 이렇다. 두 국가 해법이라는 개념 전체가 이른바 ‘도덕적 우월성 과시(virtue-signaling)’라는 사회적 행태와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민족을 위한 두 국가라는 구상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이고 심지어 고귀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공평한 해결책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모두가 이익을 얻는 진정한 상생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부합한다.

세뇌 교육의 대가

자신들의 선함을 부풀려 드러내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지도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세뇌 교육의 실험에 속해 온 사람들 내면에 쌓여 있는 거대한 증오와 경멸이다.

그들이 가정과 학교, 모스크에서 받은 유독하고 치명적인 교육은 그 목적을 달성했다. 유대인들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거해야 할 악마로 묘사한 것이다. 유대인의 수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희생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다른 사회를 끝장내는 데 헌신하는 사회가 생산적인 무언가를 건설하거나 자신의 성취와 업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괴에 집착할 때 위대한 성취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공언한 적을 마침내 제거하겠다는 목표에 완전히 역행할 뿐 아니라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설령 그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젊은이들이 살아남아 그 꿈의 실현을 물려받지 못하는 이유다.

자신들의 뒷마당에 있는 악을 제거하는 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바로 이것이 수십 년 동안 둥근 못을 네모난 구멍에 끼워 맞추려 애써 온 세계 지도자들이 완전히 놓치고 있는 비극이다.

그러므로 생각해 보면, ‘우리 시대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평화’를 가로막는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관대하며 가장 높은 윤리적 기준을 지닌 인물로 보이게 하려는 개인적인 욕구다.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망을 계속 붙들고 있도록 강요함으로써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젊은 생명들이 사라지게 하며, 어떤 진전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갈등을 극단적으로 연장하는 행위다. 마치 세계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골칫거리로 남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과도 같다. 벗어날 수 없는 모든 수렁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무익하고 진정성 없는 노력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왜 이 문제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지 묻는 수고조차 하지 말라. 그들은 누가 가장 문명적이고 원칙을 지키는 모범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는지를 겨루는 경쟁에 깊이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그 최고의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분쟁은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결과는 더 많은 유혈 사태로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그 어떤 명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에 처음 게재됐으며, 허가를 받아 재게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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