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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Blog / Guest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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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다음 숙청·퇴출 대상은 연예계인가?

 
2023년 11월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선라이즈의 아메란트 뱅크 아레나에서 열린 ‘트러스트폴(Trustfall)’ 투어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팝가수 핑크(Pink). (사진: IMAGO/미디어펀치/로이터)

뛰어난 가창력과 멋진 춤 동작 몇 가지만으로도 일류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었던 옛 시절을 기억하는가? 오늘날에는 야망과 재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치적 올바름(Woke)’ 군중의 비위를 맞추려면 이제 소위 ‘올바른’ 정치적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온갖 노력과 희생을 바쳐 일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시작은 에드 시런(Ed Sheeran)의 미온적인 대응이었다. 오프닝 공연을 맡은 래퍼 맥클모어(Macklemore)가 무대 위에서 "팔레스타인 해방(Free Palestine)"을 목 놓아 외치며 선동한 끝에 향후 합동 공연 라인업에서 퇴출당하자, 시런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치 대신 오롯이 음악의 영역에 머물고 싶어 했던 시런의 성명은 이스라엘의 비극에 공감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과도한 대응을 비판하며 양측 모두를 건드렸고, 결국 그는 양쪽 진영 모두로부터 배척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설익은 입장문이 남긴 교훈은 명백하다. 결코 이스라엘을 고통받는 피해자로 묘사해서는 안 되며, 그랬다가는 커리어가 끝장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팝 가수 핑크(Pink)의 사례를 보라. 유대계 아티스트인 그녀는 맥클모어가 시런의 콘서트를 가로채 일상을 침범한 수많은 분열과 갈등을 배제한 채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야 마땅할 무대에 정치를 끌어들인 데 대해 개인적인 두려움을 표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쏟아낸 발언으로 인해 자신이 느낀 불편함을 털어놓자마자, 그녀를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에서 해임해 처벌하라는 청원에 무려 2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서명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시대의 거센 조류에 맞선 대가가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그녀가 지난 3년간 벌어진 참상의 가장 큰 피해자로 양측의 무고한 어린이들을 함께 인정하려 애썼다는 사실조차 참작되지 않았다.

반이스라엘 군중의 머릿속에는 유대인 어린이의 안위 따위는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가자의 아이들만이 동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의가 특정 진영의 전유물로 전락한 이 일방적인 세상에서는, 아무리 자격이 차고 넘친다 한들 진짜 피해자조차 모든 연민을 박탈당하고 만다. 1,200명이 야만적으로 학살당한 비극이 우리의 눈물을 흘릴 가치조차 없다고 도대체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고통스럽고, 불안하며, 부도덕하다고 느껴지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는 이제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특권이 되었고,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플랫폼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대가는 가장 가혹하게 청구된다.

워키즘(Woke)의 몽둥이를 치켜든 할리우드 배우들로부터 시작된 이 광풍은 이제 무대에 서는 모든 대중 예술인에게로 번졌다. 한때 노래 사이에 관객들과 따뜻한 사적 교감을 나누던 소소한 담소를 대신해, 오늘날의 공연자들은 늘 반이스라엘 명분을 최우선에 내세우는 극단적 진보주의의 반지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시런이 시도했던 것처럼 정치의 영역 밖에 머물고 싶다는 변명으로 이를 거부하는 자는 그 입장을 강요당하며 더욱 거센 압박에 직면할 뿐이다!

이것은 당신이 그들의 기준에 부합할 만큼 도덕적이고 명성을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판정할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군중의 강요와 폭력이다. 이 게임에 응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누가 생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절대 권력을 그들에게 바치지 않는 순간, 결코 건너서는 안 될 불가역의 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이 ‘Woke’ 세력은 스스로를 생사를 가르는 절대 권력을 쥔 '최고 재판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올바른 편을 드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고, 감히 독자적인 생각을 품는 자에게는 파멸을 선고한다. 세상이 그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때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벌어들이던 막대한 수익은 이제 복면을 쓴 혐오자들의 손아귀에 쥐여 있다. 체크무늬 케피예(keffiyeh)는 이 시대의 도덕 경찰로 군림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다른 모든 이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 그들만의 유니폼이다.

그들이 '축복'을 내려야만 예술가는 아무런 방해 없이 활동을 이어가며 무대에 설 수 있다. 단, 공연 도중 어딘가에서 의무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얹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 발언이 단지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두 마디 필수 단어에 그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밥줄을 유지하기 위해 상납해야 하는 필수 통행세가 되었다.

반대로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성립한다. 피리 부는 자에게 삯을 내기를 거부하는 아티스트는, 자국민을 방어하겠다는 최소한의 당위성을 가진 이스라엘을 규탄하지 않은 죄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모든 팬이 똑똑히 목격하도록 즉각적인 조리돌림 캠페인이 개시될 것이기에 다음 무대를 기약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는 비단 공연자들만을 겨냥한 조직적 공격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들의 팬들 역시 사냥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을 뒤섞지 않고 오로지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무대에 선 자유로운 예술가의 콘서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석할 관객이 누가 있겠는가?

결국 그 예술가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편협하다고 낙인찍힌다면, 그 팬들은 또 무엇이 되겠는가? 공연에 정치를 끌어들이기를 거부하거나, 혹은 증오자들의 기준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공연장 밖에서 감히 친이스라엘 메시지를 소신 있게 밝혔던 스타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대단한 용기를 쥐어짜 내야만 하는 지경에 곧 이르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인물을 향한 공개적인 대중 린치는 다음 단계 수순이 될 것이며, 그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팬들까지 함께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지난 3년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은 반이스라엘 정서의 극단적 고조를 감안할 때, 이것이 디스토피아적 공상처럼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의 현실이 이토록 병적인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은 결국, 스스로 신이라도 된 양 착각하며 모든 인간의 도덕성을 재단하고 그 생각과 동기를 심판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독선적인 무리에게 개인의 자유의지를 송두리째 넘겨주는 데 있다.

개인의 천부인권을 양도하는 바로 그 순간, 다시 돌아갈 길은 없다. 그들이 새롭게 거머쥔 지배력과 자의적으로 부여한 권력은 철저히 통제되고 감시될 것이며, 다시는 자유의지나 개인의 선호를 행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축복이 바로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심지어 하나님조차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애초에 로봇과 같은 존재로 창조되었을 것이다. 그 소중한 권리를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