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심장부에서 활동했던 모사드 요원 슐라미트 코헨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베이루트의 우리 여성”으로 알려진 모사드 첩보원 슐라미트 코헨 키식은 레바논 내부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며 목숨을 걸었다. 시리아에서 처형된 전설적인 이스라엘 요원 엘리 코헨과 달리, 그녀의 이야기는 순교가 아닌 생존의 이야기다.
코드명 ‘더 펄(The Pearl)’로 알려진 그녀는 1917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영국 위임통치 기간에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 16세 때,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부유한 레바논계 유대인 상인 요세프 키시크와 결혼해 그와 함께 베이루트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그녀의 삶과 모사드를 위한 비밀 활동이 펼쳐지게 된다.
레바논에서 ‘마담 코헨’으로 알려진 그녀는 자신의 매력과 언어 능력을 활용해 대통령, 장관, 고위 군 장교를 포함한 레바논 엘리트층과 인맥을 구축했다. 그녀는 카밀 샤문 대통령, 리아드 알솔 총리, 심지어 아랍 걸프 지역 왕자들까지 저명한 인사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었다. 상류 사회 내에서의 지위를 통해 그녀는 민감한 정치 및 군사 논의가 이루어지는 비공개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한 번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레바논 고위 장교들이 이스라엘 땅 침공 계획을 논의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메시지를 작성해 국경 바로 건너편 메툴라에 있는 하가나 본부로 밀반입함으로써 이 정보를 유대군에 전달했다. 이 행동은 그녀의 역할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녀를 이스라엘 정보망의 귀중한 정보원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14년 동안 그녀는 레바논에서 이중 생활을 이어갔으며, 사회적 지위를 위장 수단으로 삼아 이 지역의 유대인 단체들에 정보를 전달했다. 그녀의 남편 요세프 키시크는 결국 그녀의 활동을 알게 되었지만 이를 지지하기로 했으며, 유대인 어린이들을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밀반입하는 작전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1961년, 코헨은 결국 체포되어 레바논 수도의 여성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신체적·정신적 고문을 견뎌냈으며, 그중에는 한쪽 눈을 실명하게 만든 전기 충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리아에서 엘리 코헨이 체포된 후, 레바논 경비병들은 그녀를 조롱하며 말했다. “그는 코헨이고 너도 코헨이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이제 네 차례다.” 그러나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고 모사드 연락망을 배신하지 않았다. 슐라미트는 시편을 암송하며 힘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처음에 교수형에 처해졌으나, 형량이 나중에 20년의 중노동으로 감형되었고, 최종적으로는 7년으로 줄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의 비밀 포로 교환의 일환으로 석방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그녀는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후 이스라엘 대통령상 및 사이먼 비젠탈 센터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다.
2017년, ‘할머니 제임스 본드’로 알려진 슐라미트 코헨은 향년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아들 이츠하크 레바논은 이후 이스라엘 주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여전히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그러나 레바논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테러 조직 헤즈볼라와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스라엘과 직접 대화를 갖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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