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새 보고서: 가자지구 여성·소녀들, ‘식량과 맞바꿔 팔려가고 강간범과의 강제 결혼’ 내몰려
한 유엔 산하 기구가 최근 몇 달간 가자지구 내에서 급증한 성기반 폭력(GBV) 실태를 상세히 다룬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조혼 및 강제 결혼, 신체적 폭행뿐만 아니라 심리적·정서적 학대와 식량, 현금, 피난처 박탈 등의 광범위한 피해 사례들을 고발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10개 기관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결과, 2026년 4월부터 6월 사이 조혼 및 강제 결혼 발생률이 이전 3개월 대비 무려 123% 급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동안 성기반 폭력 사건은 60% 증가했으며, 이는 "극도로 악화된 보호 환경"을 방증한다. 다만 기구 측은 지원 보호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피해자들이 신고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다소 개선된 점도 통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기록된 피해자들의 연령대는 12세부터 59세에 달했다.
유엔의 성·생식 건강 전문 기구인 UNFPA는 극심한 기아와 빈곤, 소득 수단 상실, 학교 폐쇄 등 "극단적인 생존 여건"이 겹치면서 가자지구의 여성과 소녀들이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 피난민 쉼터에 머물고 있는 한 여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치심과 가문의 스캔들을 막기 위해 성폭행 피해자를 가해자와 강제로 결혼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학교 피난처에서 강간 사건이 발각되면, 바로 다음 날 그 학교 안에서 결혼식과 잔치가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식량을 얻기 위해 어린 딸들을 팔아넘기는 비극적인 사례들을 증언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BBC는 "자신과 다른 어린 자녀들이 먹고살기 위해 밀가루 두 포대를 대가로 14세 딸을 시집보낸 남성도 있었다"는 증언을 전했다.
영국 공영 언론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 이전에는 이러한 잔혹상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주장했으나, UNFPA 자료에 따르면 전쟁 이전인 2022년에도 조혼율은 17.9%에 달했고 2009년에는 28%를 기록한 바 있다. 가자 최고 샤리아(이슬람법) 법원의 최신 통계에 따른 현재 조혼율은 20.6%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기반 폭력 사건의 압도적 다수는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의 손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내 15개 피난민 수용 시설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 실태 감사 결과, 15개 거점 모두에서 "불충분한 조명 시설, 사생활 보호의 부재, 열악한 식수·위생 환경"이 확인되었다.
UNFPA는 "여성과 여아들은 화장실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물 섭취를 제한하며, 해가 진 뒤 이동을 피하고, 피난처 내부를 이동할 때도 반드시 동행인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고 보고했다.
이번 보고서는 약 10년 전, 두브라브카 시모노비치(Dubravka Simonovic)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이 팔레스타인 영토 내 성기반 폭력의 증가 원인을 이스라엘 탓으로 돌렸던 과거의 논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유엔 감시단체 '유엔 워치(UN Watch)'의 힐렐 노이어(Hillel Neuer) 대표는 장기화된 이스라엘의 점령과 팔레스타인 여성에 대한 폭력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시모노비치의 주장에 대해, 보고서 내에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근거 데이터가 결여되어 있다며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노이어 대표는 "결국 팔레스타인 남성이 아내를 때리는 것조차 이스라엘 탓이라는 식"이라고 냉소적으로 꼬집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공식 국영 방송이 아내를 때리는 법을 가르치는 이슬람 설교자들의 방송을 정기적으로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가?"라며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성기반 폭력 데이터와의 비교를 요구했다.
그는 이어 "라말라의 한 남성이 아내를 구타했을 때 '이스라엘 때문에 그랬다'고 둘러대도록 부추길 만큼, 팔레스타인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는 행태를 언제까지 지속할 셈인가?"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번 가자지구에 대한 최신 UNFPA 보고서는 전시 상황과 직결된 여러 요인들이 여성들의 안전에 대한 기존의 위협 요소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는 점을 명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된 성기반 폭력 중 신체적 폭행이 31%를 차지했으며, 이는 주로 극도로 과밀한 텐트, 피난 이동 경로, 공용 급수대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의료 인프라와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는 여성과 여아들의 신체적 안전을 다각도로 위협하고 있다.
네스토르 오워무항기(Nestor Owomuhangi) UNFPA 팔레스타인 사무소 대표는 성기반 폭력의 급증세에 대해 "보고된 사건들의 충격적인 급증세 이면에는 안전과 인간의 존엄성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가자지구 내에서 평가 대상이 된 209개 보건의료 서비스 공급 시설 중 온전히 정상 가동 중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보고서가 지적했듯 조혼이 증가함에 따라 청소년 임신과 출산 합병증 위험 역시 동반 상승하고 있다.
오워무항기 대표는 "UNFPA와 파트너 기관들이 안전지대와 최전선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수십만 명의 피난 여성과 소녀들은 최소한의 사생활 보호나 안전, 응급 모성 의료 서비스조차 받지 못한 채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방치되어 있다"며 "성기반 폭력 대응 및 예방을 위한 재정 지원은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의 절대 타협할 수 없는 핵심 기둥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