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때를 위함인가? 10·7 참사로 가족을 잃은 크네세트 초선 의원 6명
대부분은 우파 또는 중도 성향이며, 6명 중 4명은 학살 사건 이전까지 뚜렷한 정치 활동 경력이 없었다.
2023년 10월 7일 공격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그날부터 지금까지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일부는 가자지구에 억류된 가족들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옹호자가 됐으며, 다른 이들은 공격이나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뒤 단체나 추모 사업을 설립했다.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정치적·사회적 차이를 넘어 그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는 지도자들도 등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에게는 이것이 정치로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새롭게 크네세트에 입성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10월 7일의 경험이 각기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행보에 영향을 미친 6명이 있다.
탈리크(탈리) 그빌리(Talik Gvili)
탈리 그빌리는 가자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송환된 이스라엘 인질인 란 그빌리 경사의 어머니다. 경찰관이었던 란은 10월 7일 이스라엘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달려갔다가 전투 중 사망했다. 하마스 테러범들은 그의 시신을 납치했으며, 시신은 2026년 1월 26일 ‘용감한 심장 작전(Operation Brave Heart)’을 통해 수습될 때까지 가자지구에 남아 있었다. 그의 귀환으로 2024년 이후 처음으로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인질이 한 명도 없게 됐으며, 텔아비브 인질 광장의 시계는 843일 만에 멈췄다.
가족법 전문 변호사인 그빌리는 우파 성향의 티크바 포럼(Tikva Forum)과 뜻을 함께했다. 이 단체는 인질·실종자 가족 포럼(Hostages and Missing Persons Families Forum)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인질들의 즉각적인 귀환을 위한 합의를 강조한 것과 달리, “이스라엘 국가와 그 안보를 강화하는 수단을 통해” 모든 인질을 귀환시킬 것을 주장했다.
이후 그빌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에 합류했다. 그는 선거운동 영상에서 자신의 정계 진출을 이스라엘을 방어하려 했던 아들의 사명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란을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네타냐후를 “강력한 지도자”라고 지지했다.
라파엘(라피) 벤시트리트(Rafael Ben-Shitrit)
라피 벤시트리트는 10월 7일 나할 오즈 군사기지를 방어하던 중 전투병인 아들 엘로이 벤시트리트를 잃었다.
벤시트리트는 이미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북부 도시 베이트셰안의 시장을 지낸 기간을 포함해 20년 넘게 시의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학살을 둘러싼 실패에 대한 국가조사위원회 설치를 요구해 온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10월 위원회(October Council)’를 설립했다. 이 단체의 회원들 가운데는 전 인질 야르덴 비바스도 포함돼 있다.
벤시트리트는 반네타냐후 변화 진영에 속한 아비그도르 리베르만의 우파 정당 이스라엘 베이테누에 합류했다. 그는 리베르만이 가장 자격 있고 경험이 풍부한 후보라고 평가하면서, 리베르만이 “우파의 가치와 이념에 충실했다”고 말하고 10월 7일 이전 가자지구 국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앙에 대해 리베르만이 했던 경고를 언급했다.
샤론 샤라비(Sharon Sharabi)
샤론 샤라비 역시 인질 위기를 상징하게 된 가족의 비극을 겪은 뒤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에 합류했다.
그의 형제 요시는 키부츠 베에리에서 납치됐으며, 이후 하마스에 억류된 상태에서 사망했다. 또 다른 형제인 엘리는 인질로 잡혀갔다가 2025년 2월 휴전 협정에 따라 석방됐지만, 10월 7일 자신의 아내와 두 딸이 집에서 살해됐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샤라비의 종교적 정체성은 전통적으로 세속적인 정치를 추구해 온 이스라엘 베이테누당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 5월 입당 결정을 발표하면서 리베르만을 “진정한 우파 지도자”라고 부르며, 하마스에 대한 그의 이전 경고와 테러조직 제거 요구도 강조했다. 샤라비는 이스라엘 베이테누가 과거 리쿠드당의 모습, 즉 “국가주의적이고 국정 운영에 책임감이 있으며 안보를 중시하는” 정당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시라 샤피라(Shira Shapira)
중도우파로 이동하면, 시라 샤피라는 역시 변화 진영에 속한 가디 아이젠코트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의 야샤르당에 합류했다.
샤피라는 아네르 샤피라 선임하사의 어머니다. 아네르는 10월 7일 노바 음악축제 인근 도로변 방공호에서 하마스가 던진 수류탄을 반복해서 밖으로 던져 내부에 대피한 사람들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다가 사망했다.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샤피라는 최근 유산부에서 테쿠마(Tekuma) 담당 부국장으로 근무했으며, 아들의 영웅적 행동을 기리는 재단을 설립했다.
그의 야샤르당 프로필은 공직 경험과 개인적인 상실이 결합해 10월 7일 이후 새로운 책임감과 사명감의 토대가 됐다고 소개한다.
미할 히르시 네그리(Michal Hirsch Negri)
중도좌파 진영에서는 미할 히르시 네그리가 야이르 라피드와 함께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가 이끄는 비야하드당에 합류했다.
그의 아들 로이는 10월 7일 키부츠 베에리에서 전투 중 사망했다. 교육자이자 라아나나 시청의 전 사무총장인 네그리는 로이터통신에 아들이 그날 아침 자신의 예비군 부대에 “우리는 시신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로이의 ‘바로잡자(fix it)’라는 접근 방식이 자신의 가슴에 새겨져 있으며, 이를 공적 활동에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옴리 로넨(Omri Ronen)
좌파 진영에서는 변호사이자 예비군인 옴리 로넨이 야이르 골란이 이끄는 민주당 소속으로 크네세트에 입성했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로넨은 10월 7일 이전부터 활동가였다. 그는 정부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도 조직한 ‘전우 형제자매들(Brothers and Sisters in Arms)’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10월 7일 로넨은 이스라엘 남부 국경을 따라 전투에 참여했다. 키부츠 크파르 아자의 개척자였던 그의 할머니 니나 로넨은 필리핀인 간병인 안젤린 아기레와 함께 자택에서 살해됐다.
로넨은 지난 2월 정당 정치에 진출한다고 발표하면서 크네세트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선거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운명적인 선거”라고 묘사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자신의 운명에 책임을 질”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말은 새롭게 정계에 진출한 여섯 명 모두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리쿠드당부터 민주당까지 각자는 10월 7일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교훈을 얻었지만, 여섯 명 모두 바로 이러한 시기에 국가 지도부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기로 선택했다.
이들 여섯 명 외에도 크네세트에 복귀하는 가디 아이젠코트와 모셰 페이글린, 베잘렐 스모트리치 역시 10월 7일 이후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개인적인 상실을 겪었다. 이들은 앞선 분쟁이나 테러 공격에서 가족을 잃은 수많은 다른 이스라엘 의원들과 함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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