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평 믿거나 말거나: 사실과 허구, 그리고 이스라엘을 겨냥한 선전전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는 다른 어떤 표현보다도 영어권의 일상 언어에 깊이 자리 잡은 문구 중 하나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언젠가 이 표현을 사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완전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명백히 사실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믿기 어렵고, 어쩌면 가능성이 낮아 보이며, 심지어 놀랍기까지 하지만 사실인 이야기를 소개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미국의 만화가 로버트 리플리가 사용하면서 유명해졌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1929년 리플리는 미국 전역의 신문에 실린 자신의 새로운 만화에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사람과 장소, 역사적 사건, 신체적 묘기 등에 관한 기이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모두 사실이었지만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에서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 머리가 두 개 달린 소와 같은 특이한 동물, 축소된 사람의 머리 등 실제 존재하지만 믿기 어려운 온갖 전시물들이 있다.
리플리가 말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믿기 어렵게 들린다는 것을 알지만, 믿거나 말거나 사실입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 현재 이스라엘을 상대로 노골적인 거짓말로 가득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는 고도로 조직화된 선전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거짓말이 반복되고 언론의 잘못된 정보까지 더해지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청중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오늘날 우리가 이스라엘에 관해 듣는 뉴스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가짜 뉴스이며, 좋게 봐줘도 반쪽짜리 진실이라는 외피에 싸여 있다.
이러한 허위 선전전은 다섯 가지 기본적인 주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향에서 추방하고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독립국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폴 하비가 즐겨 말하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내용이다.
이러한 비난 가운데 첫 번째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라는 것이다. 이 비난은 1948년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한 첫날부터 유대 국가를 향해 제기돼 왔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짜 뉴스다. 실제 역사적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스라엘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전쟁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실제로는 그 전쟁 가운데 단 하나도 이스라엘이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유엔의 인정을 받아 독립을 선언했다. 명백한 사실은 유엔이 같은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신들만의 국가를 가질 수 있었고, 독자적인 국경을 가진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처럼 독립국가를 선언하는 대신 전쟁과 평생에 걸친 테러리즘을 선택했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오늘날 무엇을 누리고 있었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 다섯 아랍 국가의 군대가 건국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나라를 침공했다. 남쪽에서는 이집트, 동쪽에서는 요르단, 북쪽에서는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가 공격해 왔다. 아랍 국가들의 목표는 유대 국가를 없애고 모든 유대인을 “바다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무기는 거의 없었고, 지하조직에서 출발한 신생 군대와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지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로 구성된 소대들이 있었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그들은 기적적으로 독립전쟁에서 승리했다.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었고 승리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독립전쟁부터 6일 전쟁, 욤키푸르 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란 전쟁과 가자 전쟁에 이르기까지 아랍 국가들이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가자 전쟁이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의 테러범들이 이스라엘에 침투해 이스라엘인 1,200명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251명을 인질로 납치하면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야만적인 집단 성폭행을 당했고, 목이 잘리기 전에 신체가 훼손됐다. 아기들과 어린아이들은 부엌 오븐에 넣어진 채 부모 앞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부모들이 처형하듯 머리에 총을 맞기 전 마지막으로 보게 된 것은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자녀들의 끔찍한 시신이었다. 노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악마적인 잔혹 행위는 끝없이 이어진다. 믿거나 말거나,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전쟁을 먼저 시작하지 않았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하고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주장도 유대인을 겨냥한 선전전의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유엔이 그 땅을 유대인을 위한 국가와 아랍인을 위한 국가, 두 개의 국가로 분할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일부 지역의 폭이 10마일도 되지 않고 예루살렘 전체도 포함하지 않는, 기형적으로 나뉜 작은 땅만 허용됐지만 그들은 기꺼이 동의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했다. 바로 다음 날 그들은 새로 탄생한 작은 유대 국가를 모든 전선에서 공격했다. 실제로 유엔은 유대인들에게 국가를 ‘준’ 것이 아니다. 3,000년 넘게 바로 그 땅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1917년 밸푸어 선언 이후 현대적인 고향을 약속받았던 민족을 인정했을 뿐이다.
신생 유대 국가가 기적적으로 승리한 독립전쟁의 여파는 일련의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7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이 집을 잃었다. 분쟁의 양측 모두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추방됐으며, 데이르 야신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기록된 참상은 정당하게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집을 잃은 사람들 대다수는 양측의 전투를 피해 피란하면서 집을 떠났다. 아랍 지도자들은 당장의 위험을 피해 집을 떠나라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곧 패배할 것이고, 그러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이러한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아랍 군대는 전장에서 완전히 패배했고,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 국경과 서안지구, 가자지구에 흩어진 난민촌에서 생활하게 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거의 7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난민촌에 남겨지게 된 재앙, 즉 자신들이 ‘나크바(The Nakba)’라고 부르는 사건을 기억하며 이날을 특별한 애도의 날로 지킨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믿거나 말거나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 세계는 유대인들이 겪은 자신들만의 ‘나크바’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85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수 세기 동안 해당 국가의 사회와 문화의 일부로 살아왔던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 추방당하고 쫓겨났다. 그들 역시 이라크와 이란, 예멘, 이집트, 모로코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강제로 쫓겨나면서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이스라엘은 그들 모두를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이라고 부르는 좁은 땅에 기꺼이 받아들였다. 안타깝게도 광대한 영토를 가진 아랍 국가들 가운데 어느 나라도 팔레스타인 동포들을 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배제했고, 오늘날까지 난민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뒀다. 최근 가자지구에서 분쟁이 벌어졌을 때도 이집트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가자지구 주민들이 안전을 찾아 이집트로 피란하지 못하도록 가자지구와의 국경을 따라 거대한 장벽을 건설했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가 존재한 적은커녕 팔레스타인의 수도조차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훔쳤다는 비난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아랍 국가들의 목표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보다는 유대 국가가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믿거나 말거나, 빼앗을 팔레스타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치권을 가진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가 존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땅은 400년 동안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1917년 영국 위임통치령의 지배 아래 놓였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인정을 통해 영토를 얻었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시작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획득했다.
전쟁 중 이스라엘 국경 안에 남아 있던 팔레스타인인 16만 명은 이스라엘 국가의 시민이 됐다. 오늘날 그 수는 2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이들은 투표하고 자신들의 정당을 통해 정치 활동을 하며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의석을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 단지 그 전쟁에서 패배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선전전의 다음 주요 주장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신들의 국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그것은 이스라엘이 허용할 문제가 아니었다. 유엔은 1948년 이스라엘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예루살렘에 접근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자치국가를 제안했다. 그러나 아랍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형제들에게 고향을 마련해 주기보다 이스라엘이 고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군이 짧은 시간 안에 새로 탄생한 작은 유대 국가를 전멸시키고, 그 결과 “강에서 바다까지” 모든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이웃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전쟁을 선택했다. 비극적으로 이는 그들만의 팔레스타인 국가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을 평생에 걸친 테러리즘으로 바꿔놓았다.
믿거나 말거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진정한 비극은 1948년이 아니라 그 이후 20년 동안 일어났다. 1948년부터 1967년 6일 전쟁까지 요르단은 2,000제곱마일이 훨씬 넘는 서안지구 전체를 완전히 통제했다. 같은 기간 이집트는 가자지구 전체를 완전히 통제했다. 그 20년 동안 두 아랍 국가는 언제든지 완전한 권리와 여권, 존엄성을 갖춘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난민촌으로 내몰았으며, 그곳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가도록 했다.
또한 오슬로 협정 이후인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가자지구를 포함해 서안지구의 97%가 포함됐으며,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을 수 있다는 추가 제안도 있었다. 아라파트는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유입되는 수십억 달러의 원조금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대신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테러 인티파다를 일으켰다.
이후 2008년에는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영토와 평화의 교환’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어떠한 역제안도 없이 거부됐다.
비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접 아랍 국가의 동포들뿐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들에게도 편리한 장기말로 이용돼 왔다. 자신들의 국가 수립을 반복적으로 거부한 것은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보다 유대 국가의 완전한 파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론을 낳았다. 오늘날까지 그들의 투쟁 구호가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져야 한다!”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6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향상될 희망조차 거의 없는 열악한 난민촌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난민 4세대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자라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 증오는 어린이들의 교과서에 나타나며, 이들이 십 대에 이르면 분노로 격화된다.
냉혹하고 분명한 사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여러 차례 자신들의 땅에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여기서 주된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문제는 그들 자신의 아랍 형제들 안에 있다. 저명한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고(故) 아바 에반은 “팔레스타인인들은 기회를 놓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향한 가장 터무니없는 비난은 아마도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는 한 인종 집단이 다른 인종 집단을 조직적으로 억압하고 지배하는 제도화된 체제로 정의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법적으로 인종에 따라 사람들이 분리됐다. 이러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증거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없었고, 정치 과정에 참여하거나 백인 대학에 다니거나 공직에 출마하거나 의회에서 활동하거나 사법 절차에서 판사로 일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진정한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의 명백한 사례였다.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국가 안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에게는 이러한 제한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은 정치 과정에 참여하고, 이스라엘 선거에서 투표하고, 공직에 출마하고,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활동하며, 이스라엘 대학에 다니고, 사법체계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한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아랍인 여러 명이 이스라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최근까지 하이파 출신 팔레스타인인 살림 주브란은 이스라엘 대법원 부원장을 지냈다. 정치 분야에서는 크네세트 의원으로 선출된 팔레스타인인 만수르 아바스가 의회 의장 직무대행과 총리실 차관을 역임했다.
경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레우미은행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명망 높은 은행이다. 널리 알려져 있고 큰 성공을 거둔 이 은행의 은행장 겸 집행이사회 의장 사메르 하지예히아는 타이베 마을 출신의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이다. 예루살렘의 하다사 병원을 방문하면 이스라엘 의사들과 나란히 일하는 팔레스타인 의사들을 볼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이들이 진료과 전체를 이끌고 있다. 히브리대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의 21%가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으로, 이들은 유대계 이스라엘인 동급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학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음에 누군가 “이스라엘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다”라고 외치는 것을 듣게 된다면, 믿거나 말거나 그 터무니없는 비난에는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기 바란다.
오늘날 가자지구가 계속 뉴스의 중심에 있지만,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전전을 벌이는 사람들은 2005년의 가자지구를 잊어버린 듯하다. 그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체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그 지역 전체를 팔레스타인 지도부에 넘겨줬다. 가슴 아픈 재정착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주민 9,000명이 거주하던 유대인 정착촌 21곳을 모두 철거했다. 군인도 단 한 명 남기지 않고 전원 철수했으며,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을 따라 서쪽 경계 전체에 해변이 펼쳐진 땅을 팔레스타인인들의 완전한 통제 아래 남겨뒀다.
세계 각국에서 수십억 달러의 원조가 유입되면서 가자지구는 고급 해변 리조트까지 갖춘 새로운 ‘중동의 진주’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부는 무엇을 했는가? 주민들에게 온갖 종류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번영하는 도시와 마을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상업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일에 착수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 돈을 테러 조직망을 구축하는 데 사용하기로 선택했다. 각종 로켓과 발사대를 만들었다. 무기를 가자지구로 밀반입해 병원과 학교, 모스크 안에 배치했다. 가자지구 전역에 걸쳐 500마일에 달하는 테러 터널을 건설하는 데 수억 달러를 썼다. 유대 국가의 파괴를 목표로 하는 무장대원들로 구성된 민병대를 무장시켰다.
가자지구가 어떤 모습이 될 수도 있었는지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선전전에서 결코 언급되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가사를 반복하는 오래된 노래일 뿐이다. “유대인들을 탓하라. 모든 것을 유대인들 탓으로 돌려라.”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제기되는 터무니없는 주장 가운데 가장 자주 반복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 역시 거짓말이다. 이러한 거짓 비난을 너무도 쉽게 반복하는 사람들은 집단학살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하는 데 시간을 들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유엔은 집단학살을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저질러지는 특정한 파괴 행위”로 정의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집단학살 시도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홀로코스트(1933~1945년)의 잔혹 행위였다. 가장 방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이 집단학살로 전 세계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살해됐다. 그보다 앞서 아르메니아인 홀로코스트(1915~1916년)가 발생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는 아르메니아 공동체 전체를 말살하려는 시도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 66만 4,000명을 학살했다. 더 최근에는 세계가 르완다 집단학살(1994년)을 목격했다. 당시 후투족이 이끄는 집권 정부가 오랫동안 이어진 일련의 학살을 통해 투치족 100만 명을 살해했다.
이스라엘에 집단학살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는 시도는 완전히 거짓이다.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의도했다면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해 2023년 10월 7일 자신들이 당한 끔찍한 잔혹 행위 이후 일주일 안에 가자지구 전체 주민을 몰살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우월한 정보망을 통해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 맞서 자국민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기 위해 병원과 학교, 아파트 건물, 모스크, 기타 주거지역에 지휘소와 무기 저장고를 배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보복 공격을 계속하기 전에 주민들에게 해당 지역을 떠나라고 경고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상공에서 전단을 살포하고, 수백만 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활용했다. 이스라엘은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젊은 아들딸 중 가장 훌륭한 인재 2,000명을 잃었다. 만약 그들이 집단학살을 벌이려 했다면, 이스라엘 군인 2,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장기전을 치르지 않고도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이크 허커비 대사는 이스라엘이 실제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집단학살하고 있었다면, 2023년 10월 7일 전쟁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가자지구 인구가 실제로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그다지 잘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시전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권위자는 미 육군 소령 존 스펜서다. 스펜서는 웨스트포인트 현대전연구소(Modern War Institute)의 도시전 연구 책임자다. 가자 전쟁을 상세히 연구한 그는 “이스라엘은 역사상 어떤 군대보다도 민간인 사상자를 막기 위한 조치를 많이 시행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군(IDF)이 추적 기술과 직접 전화 통화, 문자메시지, 드론과 확성기 배치, 민간인이 전투지역에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교전 중 전술적 일시 중단을 시행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집단학살 비난이 “하마스의 선전과 언론의 왜곡”에서 비롯된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가자 전쟁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수 톤의 식량을 제공했으며, 수십만 명의 가자지구 어린이들에게 감염과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예방접종도 실시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활동과 그 밖의 수많은 유사한 조치들은 집단학살이라는 어떠한 비난과도 상충한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수십억 달러의 자금으로 운영되고, 소셜미디어에서 검증되지 않고 근거도 없는 주장들로 힘을 얻으며, 주류 언론 매체들의 도움까지 받는 경우가 많은 이스라엘을 겨냥한 선전전이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이며, 아랍인의 땅을 빼앗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국가 수립을 막았으며,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거짓말을 계속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기록은 분명하다. 이는 단순히 명백하게 사실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이 모든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이를 끝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 말의 전쟁은 결국 타당한 사실적 근거가 없는 반쪽짜리 진실에 관심이 있는지, 거짓말 전체를 믿는지, 아니면 허구가 아닌 실제 사실에 관심이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실은 분명하고 증거는 압도적이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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