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유대계 지도자, ‘정착촌 제품 금지’ 규탄… “반유대주의 확산 깊은 우려”
네덜란드 유대인 공동체(NIK)의 이갈 마르쿠쇼베르(Jigal Markuszower) 회장이 유대·사마리아(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생산품에 대한 네덜란드 정부의 신규 금수 조치를 강도 높게 규탄하며, 이번 조치가 이스라엘을 향한 적대감 고조의 또 다른 징후이자 네덜란드 거주 유대인들을 겨냥한 반유대주의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 TOI)과의 인터뷰에서 이 네덜란드 유대계 지도자는 새 법안을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마르쿠쇼베르 회장은 새 네덜란드 법률규정이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를 포함한 지역의 제품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법은 우리가 예루살렘 시장에서 장을 보더라도 원하는 물건을 자유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금지 조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며, 이와 유사한 조치들이 끊임없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9월 22일 발효된 네덜란드 정부의 신규 무역 조치는 유대·사마리아,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등 네덜란드가 점령지로 규정한 지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 구매 및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이용하는 이스라엘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네덜란드 공항 당국이 신규 규제 품목을 소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표적 검색을 실시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해당 조치를 강력히 규탄하며 네덜란드 외교관들에 대한 신임장(외교관 인가)을 취소하는 맞대응에 나섰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학살 이후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간의 외교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유럽연합(EU) 내에서 이스라엘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국가 중 하나로 돌아섰으며,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지난 8월 카스파르 벨트캄프(Caspar Veldkamp)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네덜란드가 EU와 이스라엘 간의 무역 협정 효력 정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마르쿠쇼베르 회장은 네덜란드-이스라엘 관계 악화와 이번 무역 제재 조치로 인해, 2025년 인구 조사 기준 약 35,000명에 달하는 네덜란드 유대인 사회를 향한 적대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깊이 우려하고 있다.
네덜란드 유대인 사회는 이스라엘과 끈끈한 가족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다. 마르쿠쇼베르 회장은 TOI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인들이 암스테르담 유대인 인구의 약 35%에서 40%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이스라엘 국방군(IDF) 수석 하잔(성악가) 샤이 아브라함손(Shai Abrahamson)이 출연할 예정이었던 하누카 콘서트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일도 있었다. 반이스라엘 활동가들이 하마스가 촉발한 10·7 전쟁과 가자지구 내 IDF 작전을 언급하며 "논란이 되는 전쟁에 IDF가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이유로 콘서트 전면 취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부 네덜란드 대학교들 역시 단지 이스라엘 학술 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술 교류 보이콧을 진행하고 있다.
마르쿠쇼베르 회장은 유대인 학교와 회당을 경비하는 경찰관들과의 관계마저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향한 적대감 고조 속에 악화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방금 전에도 한 경찰관이 통화 중 내가 '예루살렘'을 언급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고 불쾌한 말을 내뱉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이민(알리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는 네덜란드 내에서 급증하는 반유대주의를 지적하며 "알리야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지금은 단지 이스라엘이 지닌 매력(인력, pull factor) 때문만이 아니라, 유럽 사회가 밀어내는 요소(척력, push factor)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상황이 조만간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도된 반유대주의 폭력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한 바 있다. 2024년 11월 암스테르담에서는 마카비 텔아비브와 아약스 간의 축구 경기 직후 이스라엘 축구팬 10명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폭력 사태는 국제적인 규탄과 함께 네덜란드 당국의 부실한 치안 대처에 대한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홀로코스트 당시에는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을 포함해 네덜란드 유대인의 약 75%가 나치와 현지 부역자들에 의해 학살당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내에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지지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암스테르담에서는 약 2,000명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이스라엘 정착촌 제품에 대한 네덜란드 정부의 신규 무역 제재 조치를 강력히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