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서 바다까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 —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 — 이 왜 끔찍하게 위험한 일인가? 한 복음주의자가 설명
의견 블로그 / 게스트 칼럼니스트 O. S. 호킨스 | 2025년 11월 20일 ALL ISRAEL NEWS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와 분석을 위해 노력하며, 다양한 의견을 게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게스트 칼럼니스트가 표현한 견해는 반드시 본사 직원들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텍사스주 댈러스 — 반유대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이제 많은 유럽 도시들을 따라 무슬림 시장들을 선출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유대인 국가와 유대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출해왔다.
저녁 뉴스에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한때 존경받던 대학 캠퍼스들에서 벌어지는 반유대주의 시위 영상이 반복적으로 보도된다.
이러한 집회들에는 공통된 주제가 흐르고 있다.
항상 전문적으로 인쇄된 대형 포스터 수십 장이 등장하며, 시위대는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라는 구호를 큰 소리로 반복한다. 이 메시지의 노골적인 함의는 이스라엘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경계는 요르단 강 서쪽과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그 땅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러한 급진적 요구는 유대인 국가의 완전한 소멸과 말살을 바라는 의지를 드러내며, 그 자리에 팔레스타인 인구가 들어서길 원한다는 뜻이다… 바로 그들의 전투 구호인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이다”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수십 년간, 특히 1948년 유대인 국가 건국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다.
사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헌장 자체가 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국가 헌장(일명 팔레스타인 국가 협약, 1968년)은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한 곳 이상에서 정치적 실체로서의 이스라엘 제거를 요구한다.
이 헌장은 두 국가 해결 방안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제9조에서 무장 투쟁이 이스라엘을 제거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명시한다.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구호는 단순히 팔레스타인의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에는 현대 세계, 특히 그들의 고대 고향 땅에 유대인 국가가 존재할 자리가 없다는 노골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성경은 유대 민족의 파괴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자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토라에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려는 자에게는 복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심한 저주를 내리겠다고 약속하셨다(창세기 12:1-3).
역사에는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로마인, 독일인 등 이 약속에 도전한 자들의 운명이 가득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눈동자”라 칭하셨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시절 성경은 “그가 그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셨다”(신명기 32:10)고 기록한다.
시편에서 다윗 왕은 하나님께 “주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키소서”(시편 17:8)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2,500년 전 스가랴는 유다 백성에게 예언하며 경고했다.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니라”(스가랴 2:8).
“하나님의 눈동자”로 번역된 반복되는 히브리어 용어는 성경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된 관용어로,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중심부인 동공을 묘사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그 동공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여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유대인들이 그분께 그토록 소중하여 비유적으로 그분의 눈동자에 비친 존재, 즉 그분의 눈동자 같은 존재라고 선언한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분이 사랑하시는 그분의 백성을 보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건드리는 자는 곧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토록 격렬한 반유대주의적 증오를 품은 자들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눈에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이 위험한 일임을 증명해 왔다!
강력한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대와 특히 나와 같은 복음주의자들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가시적이고 목소리 높은 지지는 일부 계층에서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이들에게는 복잡하고 난해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우리 유대인 친구들 중 상당수가 우리의 지지를 의심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일부는 타당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고향”이라 부를 곳을 위해 싸우고 희생한 민족들 중 극소수에 불과한 이들에게 유대인 유산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당연히 가장 중요하다.
역사는 수세기 동안 교회의 박해와 노골적인 강제 개종 시도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유대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어떠한 지지 수용에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무조건적이고 열정적인 지지를 이해하는 것이 여전히 일부에게는 불편하고 건강하지 못한 동맹으로 느껴진다.
도대체 우리 복음주의자는 누구인가?
미국 내 복음주의자는 6천만 명 이상, 전 세계적으로는 약 6억 명에 달한다.
'복음주의(evangelical)'라는 단어는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좋은 소식의 전파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비록 로마 교회 내 소수 신자들이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 칭할 수는 있으나.
우리는 주류 개신교도도 아니다. 비록 극소수이며 점점 줄어드는 그들 중 일부가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히브리어 성경과 기독교 성경(구약과 신약) 모두를 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기독교인들로, 모든 성경이 신적 영감을 받았다고 믿는다. 솔로몬이 선포한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거짓이 없다”(잠언 30:5)고 믿는다.
우리는 종말론적 해석학을 고수하며, 하나님께서 특히 이스라엘 땅과 관련하여 유대 민족과 여전히 언약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영원한 소유”(창세기 17:8)로 주신 땅이다.
따라서 성경의 땅이 “강에서 바다까지” 유대 민족이 아닌 다른 이에게 속한다는 주장은 모욕적일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의 진실성과 신뢰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신다는 약속(창세기 12:3)과, 이스라엘을 건드리는 자는 사실상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라는 경고(스가랴 2:8)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스가랴 2:8).
우리 도시와 동네 거리에서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반유대주의가 만연하는 이 시대에, 복음주의자로서 우리와 유대 민족의 관계는 무엇인가?
유대인에 관해 우리 지침서인 성경은 왜 우리가 이처럼 확신과 헌신으로 유대인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특별하다.
성경이 펼쳐질수록 우리는 특별한 약속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발견한다… 특별한 백성에게…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주어진 약속이다.
특별한 약속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 언제나 감사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지켜진 약속이다.
약속을 하는 것과 그것을 지키는 것은 종종 완전히 다른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깨진 약속의 대상이 된 경험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약속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약속을 지키신 완벽한 기록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가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지 여부는 우리 자신의 성품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께는 거짓말하실 수 없으심”(히브리서 6:18)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약속이 있다.
조건부 약속과 무조건적 약속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리라”(요한일서 1:9)고 약속하셨다. .
그러나 같은 구절에 “만일”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히브리 성경에서도 조건부 약속을 발견할 수 있다.
자주 반복되는 약속 중 하나는 역대하 7:14에 나온다. “만일 내 백성이…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 들으며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그러나 성경에는 무조건적인 약속들도 있으며, 그 성취는 우리의 행함과 전혀 무관하다.
무지개가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무조건적인 약속을 상기하게 된다(창세기 9:13-16).
무조건적인 약속에는 ‘만약'이나 '그때’ 같은 조건이 없다.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은 단호히 무조건적이다.
토라의 초기 장들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삼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창세기 12:1-3).
후에 하나님은 이 약속을 확대하여 유대인들에게 강에서 바다까지, 심지어 그 너머까지의 땅을 “영원한 소유”로 주시겠다고 명시하셨다(창세기 17:7-8).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영원한” 언약의 권리 보유자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지, 그들의 능력이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이 특별한 약속은 조건 없이 영원히 변함없는 것이다.
오늘날 논쟁은 강과 바다 사이에 있는 그 작은 땅덩어리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영원한 소유”로 직접 주신 것이다.
기록된 인류 역사 또한, 단순히 성경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편에 서 있다.
수없이 많은 고고학적 발견들(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은 다윗 왕이 삼천 년 전 예루살렘을 유대 민족의 수도로 세웠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종려주일 길로 나귀를 타고 감람산에서 내려오시며 군중의 호산나 환호에 예수님은 선언하셨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할 것이요” (누가복음 19:40).
오늘날 다윗 성에서 진행 중인 발굴 현장을 방문해보라. 고고학자의 삽이 땅을 파는 순간마다 고대 예루살렘의 돌들이 울부짖고 있다.
정직하고 진지한 역사가라면 누구도 유대인들이 서기 70년 티투스와 로마 군단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수세기 전부터 그곳을 점유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후 거의 2천 년 동안 전 세계로 흩어지고 분산된 그들은 독일 홀로코스트에서 전 세계 유대인 인구의 문자 그대로 3분의 1이 말살되는 참상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적적으로 20세기 중반에 고대 고향을 완전히 재건하고 수차례 방어하며 정착했다.
역사와 성서는 확고히 유대인의 편에 서 있다.
성경이 진실임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는 그 페이지들 전체에 걸쳐 예언이 이루어지고 약속이 지켜지는 방식이다.
가장 명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하신 특별한 약속들이다.
성경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찾고 있다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직접 목격하라. 이방인들 사이에 흩어져 살았던 민족이 2천 년 만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사막을 다시 꽃피우고, 모든 역경을 딛고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한 기적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을 보라.
이곳을 '약속의 땅'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특별한 백성에게 주어진 특별한 약속
이 특별한 약속을 받은 특별한 백성은 누구일까?
유대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내가 너에게... 가나안 땅 전체를 영원한 소유로 주리라” (창세기 17:8).
이 특별한 백성에게 주신 이 약속은 시편 기자 다윗의 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확증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가나안 땅을 너희의 기업으로 주리라” (시편 105:11).
또한 역대기 상에 기록된 다윗의 감사 찬송에서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도전했다.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라. 그가 천 대에 걸쳐 명하신 말씀,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 이삭에게 맹세하신 약속, 야곱에게 규례로 삼으시고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신 말씀, 곧 ‘내가 가나안 땅을 네 몫으로 주어 영원한 소유로 삼으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역대기상 16:15-18).
강에서 바다에 이르는 이스라엘 땅은 누구의 것인가?
사람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는 자들에게는 단 1초의 논쟁 가치도 없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특별한 약속은 특별한 백성에게 주어졌다… 이 땅은 유대인의 것이며, 일시적인 소유가 아니라 “영원한” 소유로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유대 민족을 택하셨다.
위대한 해방자 모세는 선언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니라. 주 너희 하나님이 땅 위의 모든 민족 중에서 너희를 택하사 자기의 소유로 삼으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사 택하신 것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니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느니라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것을 지키시려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고 너희를 구속하셨느니라…" (신명기 7:6-8).
복음주의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지지해 온 반면, 현재 복음주의의 더 개혁주의적인 신학적 집단에서 비롯된, 젊은 세대 복음주의자들 일부를 감염시키는 서서히 퍼지는 바이러스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 감염은 대체 신학(replacement theology)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간단히 말해 대체 신학은 세 가지 전제에 기반을 둔다.
첫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분께서 한때 그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철회하셨다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철회된 약속들은 이제 교회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졌으므로,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의 메시아로 거부했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계획에서 특별한 역할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이 신학을 고수하는 이들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은 전 세계 거의 195개 국가 중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의 지원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대체 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이 조건부이므로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는 논리를 고수한다.
이러한 논리는 인간이 자신의 사고 체계 안에서 생각하는 바와 특정 사안에 대해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것에 더 기반을 두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가르치는 내용을 편리하게 제쳐두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교회를 그 자리에 세우셨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이전의 약속들을 교회에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국 이 이전 약속들은 조건부이므로 취소 가능하다고 고집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실지 묻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분께서 성스러운 말씀 속에 이에 관한 구체적인 말씀을 남기셨을까?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생각에 대해, 그분의 오류 없는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며, 영감 받은 사도 바울의 펜을 통해 스스로 이 질문을 제시하신다. “그러면 내가 묻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로마서 11:1-2).
대부분의 성경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내용은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한때 유대 민족에게 주신 모든 약속들이 철회되어 교회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은 어떤가?
로마서 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의 시대에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올리브 나무의 비유를 통해 제시하신다.
성경에서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사용된다.
성경의 땅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명한 감람산 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시 멈춰 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실제로 그리스도 시대인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하고 굽은 올리브 나무들을 목격한다.
그 나무들은 십자가 처형 전날 밤 그분이 동산에서 겪으신 고통을 목격했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같은 나무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단단하고 깊게 박힌 뿌리 위에 여전히 서 있으며,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기 위해 가지를 뻗고, 여전히 올리브를 맺고 있다.
하나님은 이 올리브 나무의 상징을 통해 교회에게 분명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신다. "만일 어떤 가지들이 꺾여서, 너희가 들올리브나무의 가지가 되어 다른 가지들 사이에 접붙여져서 올리브나무의 뿌리에서 양분을 함께 받는다면, 그 가지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네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지탱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로마서 11:17-18).
이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체하고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주시는 분명하고도 시의적절한 경고다.
이 올리브 나무의 뿌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상징하며, 뿌리는 그분의 약속을,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을, 접붙여진 가지들은 교회 안의 사람들을 나타낸다.
성경은 교회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교회를 지탱한다고 강력히 상기시킨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그 줄기에 접붙여져 이스라엘을 보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체 신학은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고 무효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은 이 점에서 분명하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으시니라”(로마서 11:29)는 말씀이 이를 명백히 밝힌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으며 그들에게 주신 땅에 관한 약속은 그들의 행위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그분의 약속에 근거하여 “영원한 소유”로 주어진 것이므로 취소될 수 없다.
대체 신학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무시하는 전제와 추측 위에 세워졌으며, 그 진정한 위험은 반유대주의의 불길을 부채질할 가능성에 있다.
어떤 경우 반유대주의는 대체 신학의 양녀와 같다.
교회가 교만하게 스스로를 새 예루살렘으로 여기고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들로 규정할 때,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들에 대한 은근한 경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순히 신학적 논쟁뿐 아니라 정치적 관점과 정책에도 현대적 파장을 미친다.
기독교적 시온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대인 국가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반대할 권한이 그들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과의 언약을 저버리셨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대체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독이라면, 반유대주의는 하나님의 마음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다고 반복해서 선언하신다.
복음주의 신자들은 시편 기자와 함께 이렇게 기도한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편 137:5-6).
그렇다.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많아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신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으나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맹세를 지키시려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고 너희를 구속하셨느니라” (신명기 7:7-8).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특별한 백성에게 주어진다…. 그들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부르심과 조건 없는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특별한 백성에게…특별한 장소에…주어진 특별한 약속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영원한 기업”이라는 약속은 매우 구체적인 땅에 부여되었다.
성경에서는 반복적으로 “가나안 땅”이라 불린다.
이 성경적 용어는 노아의 손자 가나안의 이름을 딴 가나안족이 이전에 거주했던 땅을 가리킨다(창세기 10:6).
이 땅은 오늘날 우리가 이스라엘, 웨스트 뱅크로 알고 있는 지역 대부분과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의 일부를 포함한다.
더 넓게는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창세기 15:18)로 언급된다.
본질적으로 이 땅은 하나님이 유대 민족과 맺으신 언약의 물리적 표징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스라엘 땅이라 부르는 곳은 하나님이 특별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 특별한 백성에게 주신 특별한 장소이다.
토라(성경의 첫 다섯 권인 모세 오경)의 전개되는 장들에서 하나님은 유대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가라…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삼으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창세기 12:1-3).
다섯 장 뒤에 주님은 이 약속을 확장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워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또한 내가 너와 네 뒤에 오는 네 자손에게 그 땅을… 영원한 소유로 주리라”(창세기 17:7-8).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에게도 이 약속을 되풀이하셨다.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너와 네 후손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 (창세기 28:13-14).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
유대인들은 이 특별한 땅과 흥미로운 관계를 맺어왔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아래 세계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신들을 좇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겠다고 반복해서 경고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내실 그 나라들 가운데서 너희가 적게 남을 것이요…너희는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신명기 4:27).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열된 왕국은 흩어지고 유배당했다. 먼저 앗수르에 의해, 그다음 바빌로니아에 의해, 그리고 마침내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 멸망 후 로마에 의해 유배되었다.
그 후 거의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종종 경멸받고 박해받는 민족으로 살며 자신들의 땅이라 부를 곳 없이 지냈다.
모든 역경과 셀 수 없는 박해 속에서도 이 선택받은 백성은 정체성을 유지해 냈다. 세대를 거듭하며 천여 개의 유배지와 고립된 곳에서 유월절 식탁에 앉아, 서로에게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만나자”고 말하며 미래의 잔치를 축하할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셨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언약하셨다. 때가 되면 그들을 땅 끝에서 다시 모으시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강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재건하셔서 그들이 “만민에게 빛이 되게 하리라”(이사야 42:6)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너희를 열국 가운데서 취하여 모든 나라에서 모으고 너희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에스겔 36:24)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고, 우리 세대는 그 일을 직접 목격하는 복을 받았다.
인류 역사상 1948년 이스라엘처럼 재탄생한 나라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대로 신실하셨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백성의 남은 자를 구원하시며…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을 모으시고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땅 끝에서부터 모으시리라”(이사야 11:11-12).
오늘날 이스라엘을 찾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거리를 걸으며 폭력적인 박해를 피해 온 러시아계 유대인들, 솔로몬 왕과 스바 여왕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흑인 에티오피아 유대인들, 주변 아랍 국가와 북아프리카 출신 세파르디 유대인들, 그리고 동유럽 출신으로 검은 코트와 긴 수염을 한 아슈케나지 유대인들까지 모두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유대인 국가가 다시금 그들의 '약속의 땅'에 재건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밤 밖으로 나가 보라. 우주에 떠 있는 보름달이 온갖 광채를 발하며, 수십억 개의 밝고 반짝이는 별들에 둘러싸여 시계처럼 정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아침 일찍 일어나 보라. 우리 태양계의 위엄 있는 태양이 매일같이 변함없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그때 예레미야의 말씀을 기억하라. “낮에는 해를 빛으로 주시고 밤에는 달과 별들의 고정된 질서를 주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군의 주님이 그 이름이니라. 만일 이 고정된 질서가 내 앞에서 사라진다면, 주님께서 선언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내 앞에서 영원히 민족으로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 (예레미야 31:35-36).
해와 달과 별들은 매일 우리에게 말하며, 이스라엘 땅을 유대 민족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 약속을 깨뜨리신다면,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약속된 메시아 예슈아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의 소망과 우리와의 새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희망이 어디 있을까?
복음주의자들의 이스라엘 지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지금도…영원히. 복음주의자들은 유대인의 메시아를 경배하며, 유대 민족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
복음주의자들은 유대인의 책인 성경을 읽으며, 유대 민족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성경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에서 꾸준히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노라” (시편 122:6)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지자와 함께 확신하며 고백한다. “내가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하리라”(이사야 62:1).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백성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소유권을 부여하신 특별한 땅이 있다고 믿는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하나님과 그분의 택하신 백성 유대인들과 함께한다…지금도…영원히!
특별한 약속이…특별한 백성에게…특별한 장소에서…특별한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오늘날 세상은 이 특별한 땅에 재결합한 이 특별한 백성의 혜택을 목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을 통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세기 12:3).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진정으로 “민족들의 빛”이 되었다(이사야 49:6).
어린 시절 우리는 종종 소아마비에 걸려 철폐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또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유대인 의사 조너스 솔크가 소아마비 치료제를 발견했고, 모든 나라의 아이들이 축복을 받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현대 심장 이식 수술법을 개발한 마이클 드베이키 같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음식을 먹다가 목에 걸려 누군가 하임리히 법을 시행해 준 경험이 있다면, 이 기술을 완성해 수많은 생명을 구한 유대인 헨리 하임리히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목록은 멘델스존, 거슈윈, 번스타인, 베를린 같은 유대인 작곡가들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들을 포함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끝없이 이어진다.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거의 4분의 1이 유대인 혈통이다.
다음에 컴퓨터로 구글을 검색해 답을 찾을 때면, 이를 발명한 유대인 세르게이 브린에게 감사할 수 있다.
오늘 페이스북에 접속해 가족과 친구 소식을 확인할 때면, 이를 가능케 한 유대인 마크 저커버그를 기억하라.
여기에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더하면, 충분히 멀리 바라볼 때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세상을 축복하고 모든 민족에게 빛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약속을 지키신 데에는 더 깊은 목적이 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한 예언이 남아 있다.
그것은 메시아가 지상에 오셔서 평화의 왕국을 세우고 예루살렘의 다윗 왕좌에서 통치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혹은 우리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우리의 메시아이신 주 예수님의 재림이다.
그때에 선지자 스가랴가 기록한 대로, 하나님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마음을 부어 주시리니 그들이 나를, 곧 그들을 찌른 자를 바라볼 때에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독자 잃은 자를 애통하듯 애통하고 맏아들을 위해 울부짖듯 울부짖으리라” (스가랴 12:10) 하셨습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우리에게 주신 가장 반복된 명령은 기억하라는 명령이다.
성경에는 이 내용이 수십 번 언급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했다. “내가 너를 잊으면, 예루살렘아, 내 오른손이 그 솜씨를 잊을지어다. 내가 너를 기억하지 못하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지어다.”(시편 137:5-6).
수세기 동안 유배 생활 속에서, 그리고 수천 번의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이렇게 축복했다.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망각은 사치스러운 선택지가 아니다.
기억 상실은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집 문설주에 메주자를 달아 두고, 들어갈 때마다 혹은 나갈 때마다 그것을 만지며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한다.
이스라엘 국가가 오늘날 존재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오랜 기억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특별한 약속들이 궁극적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로마서 11:26) 때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를 맞이할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신들에게 주어졌음을 깨닫는다.
기억에 관해 말하자면, 예루살렘 대회당의 오랜 회장 자리 자페(Zalli Jaffe)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주의적 지지를 논하면서 W.A. 크리스웰 박사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심장에 대해 말하지 않고 몸의 혈액 순환계를 논하는 것과 같다.”
크리스웰 박사는 반세기 동안 역사적인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겼으며, 이 교회는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복음주의적 지지자로 꼽혀왔다.
크리스웰 박사는 달라스 강단에서 나의 선임 목회자였으며 여러 면에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그는 1948년 현대 유대 국가 수립 이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시온의 친구’ 중 한 명으로 많은 이들에게 애틋하게 기억된다.
그는 독립 전쟁 직후 이스라엘을 방문한 최초의 복음주의자였다.
그 첫 방문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건국자이자 초대 총리인 다윗 벤구리온과 우연히 만날 기회를 가졌다.
두 사람은 벤구리온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된 평생의 우정을 쌓았다.
갈릴리에 있는 만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며, 예루살렘 대성당 벽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져 유대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그의 사랑과 충성을 기리고 있다.
1995년 가을, 그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사랑하는 땅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방문하고 싶어 했다.
아내 수지와 나는 그를 이 마지막 여정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셨다.
당시 이스라엘은 러시아 알리야(이민)의 시대를 맞이하여 10년 동안 백만 명의 러시아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는 상황을 겪고 있었다.
이는 국가 인프라에 엄청난 도전을 가져왔고, 그 결과 고학력의 러시아 의사들과 대학 교수들이 생계를 위해 호텔에서 화장실 청소부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위대한 교향악단 출신 러시아 음악가들은 예루살렘 거리 모퉁이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발치에 놓인 모자에 던져지는 작은 동전을 받았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우리 소그룹은 예루살렘 중심부의 벤 예후다 거리에 있는 거리 쇼핑몰을 거닐고 있었다.
이곳은 노점상, 커피숍, 카페, 보석상 등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매일 밤 현지인과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을 끌어모았다.
갑자기 크리스웰이 우리 소그룹에서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급히 길을 되돌아가며 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벤 예후다 거리 끝자락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늙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의 매혹적인 선율을 바이올린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하티크바는 히브리어로 '희망'을 뜻한다… 2천 년 동안 예루살렘을 갈망해 온 모든 유배 유대인의 희망과 기도를 담은 노래다.
두 백발의 노인을 향해 다가갈수록, 크리스웰은 늙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모습을 경외심에 사로잡혀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크리스웰이 평생 설교하고 믿어온 성경 예언이 이제야 실현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를 떠올릴 때면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이는 온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유대인들이 다시 모이는 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확실한 증거임을 말해준다.
다음에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말을 듣거나 보게 될 때, 그것이 하나님이 소유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신 땅을 묘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이스라엘을 건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 일을 상당히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신다.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 특별한 약속들이 특별한 장소에 사는 특별한 백성을 위한 것이며, 특별한 목적—사람들을 성경의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한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성취를 이스라엘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의 약속에 근거하신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복음주의자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행함으로, 즉 옳고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노력으로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상속받고 언젠가 새 예루살렘의 도래 속에서 우리 자리를 찾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뿐이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친구들에게 전한다 —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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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S. 호킨스
O.S. 호킨스는 TCU(경영학사)와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신학석사, 박사)을 졸업했으며, 텍사스주 달라스에 위치한 역사적인 퍼스트 침례교회의 전 담임목사입니다. 그는 하퍼콜린스/토마스넬슨 출판사에서 출간된 베스트셀러 ‘코드 시리즈’ 묵상집(『여호수아 코드』, 『성경 코드』 등)을 포함해 50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으며, 해당 시리즈는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그의 웹사이트 oshawkins.com을 방문해 보세요.
O.S. Hawkins is a graduate of TCU (BBA) and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Div; PhD) and is the former Senior Pastor of the historic First Baptist Church in Dallas, Texas. He is the author of over 50 books including the best selling Code Series of devotionals including the Joshua Code and the Bible Code published by HarperCollins/ThomasNelson with sales over three million copies.Visit him at oshawkins.com